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시노 타이치로 Headshot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청년은 왜 우익이 됐을까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Taichiro Yoshino
Taichiro Yoshino
[관련 기사]

재일한국인이나 외국인 배척을 외치는 소위 '재특회'를 거리에서 실력으로 반대하는 우익청년 야마구치 유지로씨(28). 그는 왜 우익단체에 들어갔을까.

-처음부터 우익 사상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군마현 기류시라는 도쿄에서 열차로 2, 3시간 걸리는 지방 도시 출신인데, 부모님이 '무조건 대학은 가라'고 하시니까 상경해서 요코하마에 있는 법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법률 공부에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해서 사흘 지나자 학교에 안 가게 됐어요. 뮤지션이나 격투선수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는데 현실은 어려웠죠. 게다가 근성도 없어서 편의점이나 음식점 알바도 오래 못 갔습니다. 그 후는 술에 빠졌죠.
'야쿠자나 우익이 되면 돈이 되지 않을까, 우익은 야쿠자보다 위험성도 낮겠지.' 이런 불순한 동기로 21살 때, 도쿄 신주쿠 번화가에서 열린 신우익단체 합동 연설회에 갔습니다. '통일전선의용군'에 들어간 것은 단순히 의장님이 멋있어서예요."

'신우익'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 우익단체는 반공산주의를 내세우면서 미국의 세계 전략을 지지하는 친미 성향을 갖고 있는 단체가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80년대에 들어서자 더욱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미국 패권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신우익'이라고 불렀고, 이들은 전통적인 우익과는 차이가 많다.

신우익단체에 들어갔는데 교통비, 활동비 명목으로 돈이 나가기만 했다. 그런데 우익 사상을 배우는 생활은 나름대로 보람 있는 날들이었다고 한다.

"다른 단체가 주최하는 워크숍도 많이 갔죠. 거기에는 우익뿐 아니라 좌익도 오니까 많이 공부가 됐어요.
저는 천황(일왕) 폐하 인간됨이 아주 좋아요. 실제로 많은 일본사람들은 황실에 호감을 느끼고 있잖아요? 황실 형태도 현행 헌법 아래서 쌓여진 것이고, (천황의 절대적인 권위를 규정한) 패전 전의 헌법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폐하가 스스로 그만두고 싶으시다고 하시면 황실제도 자체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합니다. 그것은 전쟁을 칭찬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라,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의 슬픔을 조용하게 추도하고 싶어서죠. 친척 중에 전사자도 있으니까요."

아마 '재특회'에도 깊은 생각도 없이 들어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도 인생에 실패한 후, 의장님을 만나 뵐 수 있어서 너무 기뻤죠. 재특회도 삶에 지친 사람들이 이끌려 들어가면서 서로 친해지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겠죠. 물론 그들 모두가 인생의 탈락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자기 나름의 설 자리를 재특회에 들어가고 나서야 찾아낼 수 있었던 거죠.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서로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귀찮은 면이 있죠"

야마구치는 재특회 회원을 한 명씩 잡아서 술 한잔 하면서 "이런 짓을 그만두자"고 설득도 하고 있다.
"저도 옛날엔 깊은 생각 없이 차별에 가까운 말을 했었을지도 모르죠. 사람은 꼭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대화는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죠. 시위에서는 거친 말만 하는 그들이지만, 실제로 만나 보면 얌전한 사람이 많더군요. 둘이서 만나면 '차별은 좋은 일이 아니다. 다시는 시위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며칠 후엔 또 시위에서 봅니다.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론적으로는 '생활보호 수급자 대부분이 재일한국인' 같은 그들의 주장은, 조금만 알고 보면 곧 거짓말이라고 알 수 있잖아요?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는 그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닌 거죠. 마치 '컬트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 같아요. 집단의 광기라고 할까..."

2014-03-26-slide_334420_3350012_free.jpg

아마구치와 함께 우익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 '재특회'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마 거기에서 희망을 봤겠죠. 요즘 일본이 우경화됐다고 하지만, 우익단체는 젊은이도 없고 힘도 없어요. 저도 신문배달을 하면서 빈 시간에 선전물을 나눠주곤 했는데, 참가하는 사람은 항상 서너 명밖에 없었죠. 휴일에 거리에서 연설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동지도 안 늘어났죠. '이런 활동 도대체 효과가 있나?' 언제나 갈등했습니다.
저와 같이 활동하면서 갈등하던 젊은 친구는 어느덧 재특회 시위에 참가하면서 '야 이거 대단해. 보통 사람이 일장기 걸고 시위하는 거야!' 고 흥분하고 있었죠. 인터넷으로 동영상이 확산되면서 쉽게 사람이 모이니까, 아주 간단하게 가능성을 본 거죠. 그런데 저는 아무리 재특회 방식에 동원력이 있어도 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반면 저를 많이 도와주신 선배가 지금 재특회에 있어서, 그들에게 카운터하는 건 지금도 망설일 때가 있죠"

우익단체에 속하면서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도 한다.
"우익도 차별에는 반대하죠. 그런데 '품격'을 중시합니다. 서로 '애국'을 자칭하면서 싸우면 '내부분쟁 같아서 보기 안 좋다'고 우익 선배가 저한테 야단을 치십니다. 그래서 저도 단체 간부를 했을 때는 잘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2012년 2월 야마구치는 '통일전선의용군'을 스스로 그만뒀다. 2013년 3월, 야마구치는 카운터 사람들이 재특회 시위를 실력으로 막는 동영상을 본 후, 카운터에 적극적으로 나가게 됐다.

나는 야마구치에게 "언제까지 카운터를 할 것인가?"라고 물어봤다.
"일단 이런 시위가 없어질 때까지. 그런데 이렇게 오래하게 될 줄 몰랐죠. 유럽에서는 네오나치와 카운터의 맞싸움이 몇 십 년이나 계속되고 있으니까 저도 장기전을 각오해야겠죠.
다만 이런 시위 때마다 거리를 시끄럽게 하는 건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고 우리도 힘들죠. 유럽처럼 차별 발언이나 행동 자체를 법으로 금지해야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나는 아마구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본"이 뭐냐고 물어봤다. 야마구치는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따뜻한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인간관계가 약해지고 남의 아픔에 둔감한 사회가 되어 버렸죠. 차별 문제의 근본에는 사람의 아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있어야 국가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