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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기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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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왜 과학 지식을 믿을 만하다 여길까요? 신뢰의 바탕엔 과학자들의 성공적인 사유 방식과 방법론이 있습니다. 그 요소로는, 기존 지식에 대한 합리적 의심, 데이터 기반의 실증적 태도와 정량적 사고, 지식의 보편적 체계화, 설명과 예측 능력이 장착된 이론의 제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론이 데이터와 모순되면, 오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반증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는 과학의 민주주의적 속성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발전은 누적적인 모습으로 전개되어왔지만, 때로 단절적이기도 했습니다. 플로지스톤설은 반증되어 라부아지에의 이론으로 대체되었고, 뉴턴 법칙은 상대성이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거리, 질량 등의 개념이 바뀌기도 하였지요. 과학의 역사는 반증과 입증의 동적인 변주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관측 결과와 이론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다고 해서 이론을 바로 포기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보조 가설을 동원한다든가 해서 보강하려 하겠지요. 그런 시도가 성공하면 이론은 더 단단해질 테고, 끝내 실패하면 반증돼 폐기되는 운명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일, 경쟁하는 학설들 가운데 어떤 주장을 더 신뢰할지 판단하는 일은 물론 과학 공동체의 몫입니다. 공동체적 평가는 이론과 실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고, 개별 과학자의 오류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걸러지지요. 살아남은 주장은 과학 공동체가 상호 비판을 통해 엄정하게 평가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철학자인 이상욱 교수는 바로 이와 같은 '증거 기반 집단지성'이 과학을 가장 믿을 만한 지식이 되게 하는 힘이라 하였습니다.

과학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어떤 게 과학 지식이 아닌지도 판단할 수 있겠지요. 과학과 비과학을 감별해 우열을 가리자는 건 아닙니다. 저는 증거 기반 집단지성의 산물이자 강력한 지식 체계인 과학을 신뢰하지만, 그게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일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과학은 종교와 서로 다른 범주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둘을 같은 층위에 놓고 대립시키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섭하게끔 하려 한다면, 그건 그냥 범주 오류일 뿐이라 해야겠지요.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며 그걸 과학적 사실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지구의 나이가 6000~1만2000년이라는 식입니다. 창조과학자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거나 이미 반증된 이야기를 과학적 사실이라 고집하며, 과학공동체가 인정하는 이론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은 형용 모순입니다. 과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 생각을 밝힐 자유는 물론 존중합니다만, 정확한 단어를 써달라고 요청할 순 있으리라 여깁니다.

과학자가 검증되지 않은 견해를 밝히며 과학자적 정체성을 내세우는 건 '잘못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입니다. 전문가 윤리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되지요. 영롱이라는 송아지가 있었습니다.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태어난 세계 최초의 송아지라 했습니다. 저명 과학자의 말이었기에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영롱이가 정말로 복제된 소였는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동료 평가 같은 공동체적 검증 없이 언론에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논문도 없었습니다.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행위였지요. 입증이 불가능하거나 검증에 실패한 주장을 과학이라 우기며 유포하는 건 더더욱 잘못된 일입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