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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섹스, 결혼 그리고 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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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소통의 출발은 올바른 이름 짓기입니다.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하면 제대로 소통할 수 없겠지요. 관련은 있지만 의미의 층위가 다른 낱말들을 섞어 쓰는 바람에 생산적인 토론에 이르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는 경우도 자주 봅니다. 대선 후보들의 토론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동성애 관련 논란이 그러했습니다.

동성애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기독교계에서 각 대선 후보 캠프에 동성애 동성결혼에 관해 어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끌어내려 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질문이었습니다. '동성애'와 '동성결혼 법제화'를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결혼이 무관하진 않지만,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거나 결혼할 수 없으면 사랑해선 안 된다 할 순 없겠지요.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건 논리적으론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떻게 반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표현이 제겐 '네모가 동그랗다'처럼 들립니다. 형용모순이지요. 저 같은 이성애자들에겐 기껏해야 '나는 그런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정도가 객관적 상황 아닐까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또 자신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40여년 전에 이미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동성결혼 법제화는 찬반의 대상이 아닌 동성애와 분리해 따져야 할 사안입니다. 동성 커플이 부부로 인정받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뭘까요? 그런 걸 살펴야 찬성이든 반대든 근거를 가지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법적인 부부가 아니라서 수술동의서를 써줄 수 없다거나, 전세자금 대출이나 국민연금을 공유할 수 없다거나 하는 어려움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면 어떨까요? 일상적 삶의 구체적 문제를 해결할 법률적 장치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랑과 결혼뿐 아니라 사랑과 섹스도 분리해야 할 논점입니다. 사랑이 늘 섹스를 뜻하진 않겠고, 또 사랑 없이 강요된 섹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뒤엣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돼지흥분제를 사용한 강간 시도나 공모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사랑은 찬반의 대상이 아닌 감정이니 반대하거나 금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섹스는 때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공장소에서 성행위 같은 걸 하는 이들을 옹호할 순 없겠지요. 단체생활을 하는 병영에서도 섹스를 허용하긴 어렵겠고요.

군대 내에서 허용하지 않기로 합의할 수 있는 건 섹스지 사랑이 아닙니다. 저는 '군대 내 동성애 금지'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군대 내 성행위 금지'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이성끼리든 동성끼리든 말입니다. '군대 내 성행위 금지'를 '군대 내 동성애 금지'라 일컫는 건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지도 않습니다. 형용모순이자 차별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명(正名)을 생각합니다.

이 글은 대선 투표일인 5월9일 새벽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칼럼이 종이신문에 실리는 날은 마침 새 정부가 들어서는 5월10일입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 비율이 지난 1년 동안 일반 인구의 여섯 배를 넘어섰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암울한 숫자입니다. 소수자가 차별당하지 않고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받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꿔봅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