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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백' 상영을 두려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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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마이클 무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최승호 피디가 있다!

최 피디가 만든 <자백>을 보고 든 생각이다. <자백>은 국정원(과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탈북 화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중심축으로 두고, 국정원에서 간첩혐의로 조사받다가 자살한 또 다른 탈북자와 박정희 정권 시절의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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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씨 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란 엉뚱한 이름(항간에는 이런 작명이 국정원의 박원순 제압 작전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있었다.)으로 언론에 어지간히 보도됐기 때문에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상이 전하는 메시지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최 피디의 카메라가 정권의 필요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해내는 대한민국의 법집행기관과 그 책임자들을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자백>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오빠인 유우성씨를 간첩이라고 자백하고 풀려난 유가려씨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유씨는 그 자백이 견딜 수 없는 고문과 회유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유씨의 고백에 따라 최 피디의 카메라는 진실을 찾기 위해 출동한다. 유씨에 대한 고문이 이뤄졌다는, 철조망과 감시카메라로 철저히 가려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를 촬영하다가 쫓겨나고, 유씨의 허벅지를 하이힐 굽으로 차는 등 고문한 수사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국정원의 내놓은 증거가 사실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연변으로 선양으로 달려갔다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그의 노력 덕에 사건은 모두 조작으로 밝혀졌고, 화면은 그만큼 힘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가해자들의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민낯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 책임자로서 재일동포 간첩사건 조작에 간여한 장본인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 사건들이 줄줄이 재심에서 무죄가 된 데 대한 심경을 묻자, 무조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간첩으로 조작된 재일동포 이철의 알리바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주일 한국대사관 쪽에 협조요청한 자신의 친필메모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며 외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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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이끌어낸 수사관은 카메라 앞에서 '초상권 침해'를 외치고, 증거를 조작해놓은 당사자는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증거조작에 눈감은 채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갔던 검사들은 재판에서 자신들의 거짓이 명명백백하게 들어난 날조차 희희덕거리는 여유를 보여준다. 압권은 사건 당시 국정원장이었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원세훈이었다. 그는 최 피디가 유우성씨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자 그 사건 자체를 모른다고 발뺌하며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다. 하지만 집요한 최 피디의 카메라는 우산 속에 감춘 그의 얼굴을 잡아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세상에나!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또는 정권이 처한 곤경을 호도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그들의 인생을 풍비박산 내놓고도 반성은커녕, 웃을 수 있는 집단,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법집행기관과 그 책임자들의 민낯이었다.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숨지게 해놓고서도 끝끝내 사과를 거부한 경찰청장도 그 연장선상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자백>은 이달 13일 개봉할 계획이다. 배급사 쪽은 최소한 전국 250개관에서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CGV와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쪽은 아직 상영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시사회조차 거부하고 있다. 이미 4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토리펀딩에 참여하고 영화 상영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멀티플렉스가 이렇게 미온적인 까닭은 <자백>의 상영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압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백> 상영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답은 삼척동자라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자백>은 우리에게 묻는다. 국가의 이름으로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들이 계속 웃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미 4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은 그 질문에 응답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자백>이 많은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봄으로써 그들의 실체를 똑똑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더 이상 그들에게 속지 않고, 그들에게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기 위한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