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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보수진영에 내려진 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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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촛불집회 1주년이 다가왔다. 작년 이맘 때 시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당시만 해도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조기 대선이 치러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제도를 두고 있긴 하지만, 국회 재적 의원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통해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어야 하고, 그 의결된 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어야 한다는 이중의 관문을 돌파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가능이 현실이 되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연인원 1700만명에 달하는 주권자들의 직접행동이었다. 현대판 명예혁명이라 할 촛불혁명은 확실히 세계사의 기적이었다.

촛불혁명을 가능케 한 건 단연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시민들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그동안 역사라는 세찬 물줄기 앞에 한 인격의 영향력은 보잘 것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박근혜를 보고 깨달았다. 박근혜가 아니었더라면 촛불혁명이 지금과 같이 흘러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법 된다. 박근혜의 집권 기간을 관통하는 정치·경제·사회·외교·남북관계 등의 총체적 실패와 누적된 실정이 특권과 두 동맹(재벌을 정점으로 보수정당, 고위관료, 사법권력, 검찰, 비대언론, 종교권력 등으로 구성된 지배 카르텔)의 정치적 호민관이라 할 새누리당의 집권 가능성을 낮춘 건 맞다. 거기에 더해 박근혜는 새누리당이 전열을 정비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 새누리당을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선택을 거듭했다.

아마 박근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에 자신의 잘못을 깨끗히 인정하고 사임했더라면 새누리당의 지리멸렬을 최대한 막으면서 자신에 대한 사법적 단죄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 전,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결정 전 등이 그 기회로 만약 이때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사임했더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에 대통령직을 던져 얻는 정치적 효과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지자들의 이탈을 완화시키고 자신에 대한 사법처벌을 피할 가능성을 살리는 선택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 직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온갖 종류의 친박들에게 해산을 명령하면서 죄값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더라면, 대통령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겠지만 새누리당의 재기에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한사코 자신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높이고, 보수정치세력의 재편기회를 봉쇄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움직이고 결정했다. 박근혜의 몰염치와 뻔뻔함과 적반하장과 윤리의식의 파탄과 헌법과 법률에 대한 끝없는 능멸은 박근혜에 대해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던 지지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아서게 만들었다. 감옥에서 재판무용을 주장하며 정치투쟁을 선언한 지금 박근혜 주변에는 사이비종교 신도들과 유사한 멘털리티를 지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힘 없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을 따름이다.

도대체 박근혜는 왜 자신의 무덤을 파고, 보수정치세력을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선택들을 줄기차게 내리는 걸까? 아마도 박근혜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청와대의 주인이다. 나는 사심(私心)없이 공심(公心)만 있는 사람이며, 결백하다. 따라서 사임은 가당치 않다. 탄핵은 기각될 것이다. 형사소추 및 처벌은 불가능하다'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박근혜는 여전히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박근혜에게 최소한의 분별력과 객관화 능력이 있었더라면, 박근혜에게 보수정치세력과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박근혜가 상황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긴 분별력과 객관화능력이 있는 박근혜, 보수정치세력과 지지자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는 박근혜가 박근혜일 수는 없다. 자신 이외에는 무엇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박근혜야말로 보수진영에 내려진 천형이다. 박근혜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박근혜를 간택한 보수진영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