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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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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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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김훈의 「공터에서」를 읽었다. 김훈다운(?)소설이었다. 김훈의 소설들은 무의미와 맹목으로 가득한 세상에 던져진 무력한 실존들의 살기 위한 안간힘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그린다. 김훈 특유의 수사(修辭)가 배제된 단문은 현실의 누추함과 핍진함을,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을 삼엄하게 그린다. 김훈은 태어나고, 자라고,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병에 걸리고, 마침내 죽는 사람의 생애를 일지를 적듯 기록한다. 김훈에게 인간의 삶은 동물의 삶이나 별의 생애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훈은 생의 남루함과 불가해성, 역사 혹은 운명의 난폭함과 그에 맞서기엔 너무나 무력한 개별적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그리는데 필적할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발군이지만 거기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 않는다. 나는 김훈이 어떤 이상도 꿈꾸지 않고, 어떤 거대담론에도 기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훈이 역사의 진보를 신뢰하는지조차 의문이다.

나는 개별적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직시하는 김훈의 눈을 존중하고, 삶의 고단함과 부질없음을 외과의사의 메스처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훈의 손에 경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김훈의 인간 이해가 지닌 한계에는 너그럽기 어렵다. 인간적 존엄이 보다 확장되는 이상을 꿈꾸며 집합적 의지와 계획을 통해 역사를, 그리하여 당대와 후대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지향과 능력을 지닌 인간을 포기한다면 과연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짐승도 생에 대한 애착이 있고, 생육하고 번성하려는 욕망도 있다. 나는 이성의 왕국과 동물적 본능 사이에, 인간의 비천함과 악마성을 간과하지 않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를 보는 시선에 인간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김훈의 최고작품이 「칼의 노래」가 아니라 「남한산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훈이 「남한산성」으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 여긴다. 김훈의 조락에는 무엇보다 김훈의 세계관과 인간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나는 김훈이 인간이 지닌 밝음과 어두움 가운데 밝음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자연을 넘어서는 종(種)이고, 운명의 아들이지만 운명을 거스르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