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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Headshot

〈택시운전사〉 광주에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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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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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를 봤다. 나는 <택시운전사>가 예술적 성취가 높다거나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택시운전사>에는 억지스러운 설정(예컨대 광주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로에서의 추격씬)이 곳곳에 있고, 배우들의 개별적 연기는 돋보이지만, 연기의 합은 조화로워 보이기보단 어수선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택시운전사>를 봐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학살의 원흉 전두환, 일베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는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고, 모독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맞서 광주민중항쟁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소중하고 필요하다. <택시운전사>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거나 신음을 끄집어내곤 한다. <택시운전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 영화에는 감동적이고, 아프고, 슬픈 장면들이 많지만, 내 마음을 울린 건 택시운전사인 주인공 만섭(송강호 분)이 두려움과 책임감(만섭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하나 있다. 게다가 그 딸은 어머니를 잃었다.) 때문에 홀로 광주를 빠져나갔다가, 핸들을 꺾어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만섭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던, 핍진한 일상을 꾸려가는 것 이외엔 별 관심이 없던 소시민이었다. 만섭이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광주에 온 것도 서울-광주 간 왕복 택시요금 10만원을 받아 밀린 월세를 낼 목적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만섭이 광주의 선량한 시민들과 부대끼고, 그들이 국군에 의해 참혹하게 진압당하는 걸 목격한 후 변한다. 광주의 실상을 외부에 알릴 유일한 사람인 피터와 그가 찍은 필름들을 광주 밖으로 보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광주로 돌아간 것이다.

만섭은 왜 광주로 돌아갔을까? 만섭이라고 해서 두려움을 모를 리 없고, 아비의 책무를 잊었을 리 없다. 그래도 만섭은 화염 광주로 돌아갔다. 아마 광주시민들에 대한 만섭의 미안함과 죄책감, 부끄러움이 미치도록 두려웠던 마음과 고아가 될지도 모를 새끼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넘어선 것 아니었을까?

진흙으로 만들어진 우린 한없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어리석고 형편없지만, 염치와 죄책감과 연민과 한줌의 도덕을 지니고 있기에 고귀한 인간이며 존엄한 존재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수많은 만섭들 때문에 여기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택시운전사>는 광주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이 땅의 만섭들에 대한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