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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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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그 후>를 읽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너무 일찍 왔거나 뒤늦게 도착한 사랑'에 대한, '한때는 사랑이었지만 이젠 사랑이 아닌 사랑'에 대한, '어쩌면 영영 당도하지 않을 사랑'에 대한 영화로 보았다.

<그 후>에서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과 직원이자 내연녀인 창숙(김새벽)의 사랑은 '뒤늦게 도착한 사랑'이다. 봉완과 봉완의 처인 해주(조윤희)의 사랑은 '한때는 사랑이었지만 이젠 사랑이 아닌 사랑'에 해당할 것이다. 하긴 두 사람이 사랑했는지 여부도 알길은 없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모두 결혼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결혼한 사람들 모두가 한때나마 사랑했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봉완과 아름(김민희)는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하지만 그 둘이 진즉에 만났더라면 연인 혹은 부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영영 당도하지 않을 사랑'에 해당한다.

봉완은 아내 해주와 내연녀 창숙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다 창숙에게 가지만, 딸을 앞세운 해주에게 백기 투항 한다. 딸을 본 순간 '내 인생은 없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돌아간 봉완과 달리 홍상수는 김민희 곁에 머물고 있다. 그게 비난받을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보기 드문 흑백영화인 <그 후>는 눈물이 날만큼 아름답다. 특히 김민희(아름)가 봉완과 해주, 봉완과 창숙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고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 보여 준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의 변화와 창을 내리고 눈을 마주하는 장면은 정말 심금을 울린다.

<그 후>가 겨울에 개봉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날 <그 후>를 보면 정말 행복해 질 것 같다. 홍상수는 여전히 진화 중이고, 김민희의 성장은 눈부시다. <그 후>는 그걸 확인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