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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철학자인가? 아니면 정치공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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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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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면에서 우뚝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은 말과 글의 장인이기도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자신의 생각을 고급의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표현해 내는 능력을 지닌 단 두 명의 대통령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반대편에 박근혜가 있다. 박근혜가 구사하는 말(나는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없다)은 수준을 따지기 이전에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번역기를 돌려야 간신히 독해가 가능할 지경이었다. 최순실과 놀랍도록 닮은 박근혜의 말은 모국어에 대한 최대한의 모욕이었다.

말이 채 되지 못한 박근혜의 말을 듣는 건 진정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박근혜의 직무정지가 가져온 사소한 행복 중의 하나는 미디어를 통해 박근혜의 말을 당분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헌재가 박근혜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박근혜의 한국어에 대한 능욕을 구경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박근혜와는 다른 차원과 의미에서 소통이 난감한 유력 정치인이 등장했다. 안희정이 그다. 안희정은 "선의"(미르·K재단 선의로 시작?...안희정 발언 논란)발언을 변호하기 위해 "통섭"(안희정 "누구의 주장도 '선의'로 받아들이는 게 소신")개념까지 동원하는 무리를 거듭했다.

최대한 선해하자면 안희정이 하고 싶었던 말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화하자'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안희정은 세 가지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 첫째는 '선의'의 예시가 박근혜의 미르와 K재단, 이명박의 4대강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미르와 K를 '선의'로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새누리당과 극우깡패들을 제외하고 있을 것 같진 않고, 이명박이 강행한 4대강 사업도(결과는 차치하고) '선의'로 평가하는 사람이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둘째는 '정치'에 대한 안희정의 무지와 몰이해다. '정치'는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는 최종심급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치'에서는 '선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도'가 집행되는 '과정'이 중요하고, '의도'의 '결과'가 중요하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자이자 직업정치인을 자처하는 안희정이 '선의' 운운하는 건 난센스다. 셋째는 안희정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21세기 지성사 운운하며 '통섭'이라는 개념을 빌려와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통섭'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곤욕을 치르는지 모를 일이다.

살아온 인생 궤적과 윤리의식과 지적 수준과 구사하는 언어의 품격에서 박근혜와 안희정을 비교하는 건 안희정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민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박근혜와 안희정 사이의 공통점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박근혜는 갓난 아기의 언어를 구사해 소통이 불가능한 반면, 안희정은 철학자의 추상적 언어를 구사해 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진정으로 염려하는 건 안희정의 철학자연 하는 언어가 아니다. 백보를 양보해 그건 스타일의 문제일 수 있고, 개선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안희정의 '선의' 혹은 '통섭'이라는 언술이 여권의 약한 고리와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한 치밀한 정치공학의 산물이라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안희정은 철학자인가? 아니면 정치공학자인가? 안희정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