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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헌법을 이용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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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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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등의 개헌론자들은 주장한다. 87년 체제 성립 이후 끊이지 않는 임기 말 대통령들의 비극의 근본원인은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탓이라고. 비극의 재연을 막기 위해선 내각제 등으로의 개헌이 필요하고 탄핵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대통령 꿈 버린 김무성, '개헌'으로 새꿈 꾸나?)

단도직입으로 묻자. 박근혜 게이트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헌법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개헌이 필요한가? 아니다. 아니다. 세번 아니다. 내각제 등으로의 개헌 없이도 대통령중심제 하의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지금의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꾸는 것이다. 의원정수를 지금의 300명에서 500명까지 늘리고 늘어난 200명은 전부 정당명부비례대표로 선출하는 방식이 최선이지만(의원 각자에게 부여되는 특권 중 일부를 철폐해 비용증가 없이 혹은 미미한 비용 증가로 의원정수를 크게 늘릴 수 있다) 지금의 의원정수를 유지한 채 선관위가 제안한 지역 200석, 비례 100석으로 비례의원수를 지금 보다 늘리는 방안도 차선책으로 고려해 봄 직 하다.

선거제도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위주로 재편되면 표의 등가성을 완전히 해치는 현 선거제도로 인해 거의 항상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해 대통령의 호위병 역할을 하는 여당의 출현이 봉쇄되고, 대통령을 감시하고 견제할 야당들이 대거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회의 항상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는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거나 국가기관을 사유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기에 더해 의회가 임명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 대통령 이하 고위공직자들의 부정, 비리 혐의를 수사하고 기소하게 한다면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벌인 범죄행각이 반복될 리 없다.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헌정파괴 및 국가기관 사유화를 통한 사익 편취 행각이 지금에서야 드러난데에는 국가형벌권 실행의 중추기관인 검찰의 직무유기 탓이 크다. 검찰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철저히 예속된 상태였다.

헌법은 죄가 없으며 헌법개정 없이도 제왕적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단은 많다. 헌법적 가치를 정치 현실 속에서 구현시키지 못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문제다. 예로부터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을 나무라는 법이다.

물론 현행 헌법이 30년 가까이 되었고, 개정의 필요성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헌법 개정은 조기대선을 통해 성립한 리더십이 출범 초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할 일이지, 새누리당 비박계의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키는 도구이거나 야권 야심가들의 권력분점 욕망을 구현하는 수단이어서는 곤란하다.

​정리하자. 헌법은 죄가 없다. 헌법개정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민주공화정을 부인하고 헌법을 파괴한 채 청와대에서 농성 중인 박근혜를 하루 빨리 끌어내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 조기 대선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헌논의는 차기 리더십이 성립된 후에 해도 절대 늦지 않다.

*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