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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헌법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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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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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고, 박 대통령은 아마 목숨을 내놓고라도 지키겠다는 입장"(靑 "朴대통령, 목숨 내놓더라도 헌법 지키겠다는 입장")

청와대 관계자라는 자가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한 말이다. 이명박, 박근혜 치하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은 죄다 겪었지만, 헌법을 송두리째 파괴한 자가 그 헌법을 목숨을 내놓고라도 지키겠다는 소리보다 더 황당한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정신이 병리적 상태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이런 발언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독법은 "내가 곧 헌법이고, 헌법이 곧 나다"라는 발상뿐이다. 마치 절대왕정 시대의 절대군주가 "짐이 곧 국가"라고 천명했듯 말이다.

헌정을 파괴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며,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도 책임지는 건 고사하고 검찰 수사까지 사실상 불응하는 박근혜는 엘시티 사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의 강행을 지시하는 등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가 자기의 판단으로 저런 결정을 내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조언(?)에 충실한 건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분명한 건 박근혜가 대통령직 사임은 고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 중 어떤 것도 내려놓을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절대군주로 여기는 듯한 박근혜를 상대로 싸우는 일은 고단하다. 현 국면에서 조급함과 방심과 비겁과 어설픈 관용은 절대 금물이다. 박근혜를 축출할 때까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주권자인 시민들의 견결한 투지와 인내심이다. 조바심을 버리고, 호흡을 길게 하고, 그러나 광장과 거리와 일상과 SNS에서 박근혜 퇴임과 부역자 처벌의 목소리를 다양한 형식으로 집요하게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외치는 대상은 박근혜가 아니다. 박근혜는 정신적 귀머거리다. 그녀에게 외쳐 봐야 우리 목만 아프다. 우리가 외치는 대상은 국회이고, 야당이고, 검찰 등의 국가기관이고, 언론이다. 어쩌면 헌법재판소가 거기에 추가될 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주권자인 시민들의 집합적 의지가 제도(국회, 검찰, 언론, 헌법재판소)를 견인하고, 역사를 결정짓는다. 주권자인 시민들의 집합적 의지가 약화되면 제도는 금방 박근혜와 부역자들에게 귀순할 것이다. 그건 왕정복고에 다름 아니다.


*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