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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이냐? 탄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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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GEUN HYE
POOL New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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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이 광화문 주변을 온통 점령해 '박근혜 하야'를 외친 11월 12일은 역사에 기록될 날이다. 이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헌법을 제정할 권리와 개정할 권리가 국민에게만 있음을 천명하였다. 11월 12일은 헌법전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헌법이 지상에 강림한 기적과 경이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대인 박근혜는 결코 녹록한 사람이 아니다. 성의 없고, 책임 없는 두 번의 사과에 이어 김병준 총리내정자 지명, 기습적이고도 일방적인 국회방문이 의미하는 건 자명하다. 박근혜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무언지를 전혀 모를 뿐 아니라 현재의 사태가 지닌 엄중함에 대해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헌법과 법률을 철저히 파괴하고 국가전체를 사유화하려고 시도했던 박근혜는 놀랍게도 정치적, 사법적으로 책임지는 시늉조차 내지 않고 있다.

박근혜의 그간의 행적을 보면 그녀가 사임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걸 기대하기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난망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 날 진도 팽목항을 찾은 박근혜가 비통함과 고통의 바다 속에서 홀로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듯, 헌정파괴범에 대한 주권자의 들끓는 분노와 실망도 박근혜에겐 가닿지 못하는 것 같다. 더 많은 추문의 보도와 수백만 시민의 집결에도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남은 임기 동안 자발적 유폐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가 너무나 가혹하지만 후회는 늘 늦게 오는 법이다.

우리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첫째, 사면(수사와 형사소추와 재판을 통해 박근혜와 최순실 패거리, 청와대 참모 및 정부 고위관료, 재벌 등이 저지른 헌법파괴행위와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하고, 박근혜만 사면해 처벌을 면케해 주는 방안)을 전제로 박근혜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길.

박근혜가 절대로 사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박근혜 게이트의 주범인 박근혜에 대한 형사처벌을 포기한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선거관리내각의 구성 - 박근혜 사임 - 조기대선(내년 초봄)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을 별다른 마찰이나 사회적 비용의 수반 없이 치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탄핵으로 가는 길. 탄핵은 박근혜의 정치 생명을 끝낼 뿐 아니라 박근혜의 신체 구속 및 박근혜 재산에 대한 환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탄핵을 실현하는 게 만만치 않고(국회재적의원의 3분의 2이상이 탄핵 발의에 동의해 탄핵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통과된 탄핵결의안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해줘야 한다), 탄핵찬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사면을 전제로 한 사임이건, 탄핵을 통한 박근혜 축출이건 간에 박근혜 퇴임 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 탄핵 당시 국회의결부터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걸린 기간은 2개월 남짓이었다. 즉 당장 국회가 탄핵을 의결하고 헌재의 인용결정이 내년 1월 하순에 난다고 가정하면, 조기대선을 내년 3월 하순(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로부터 60일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에 치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사면을 전제로 한 사임을 박근혜에게 최후로 통첩하고, 박근혜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즉각 탄핵절차에 돌입하는 것이 최선일 듯 싶다. 사면을 전제로 한 사임요청이나 탄핵결의는 우선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몫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시민이 광장과 거리와 사이버공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박근혜 축출'을 조직하고 외치는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주권자의 집합적 운동만이 제도(박근혜와 국회)를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