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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Headshot

'춘몽'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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률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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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춘몽'을 봤다. 영화 제목처럼 정말 '봄날의 꿈'같은 영화다. 근래 들어 이처럼 슬픈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표현한 영화는 처음 만났다. 은평구 수색은 첨단과 계획과 부의 상징인 상암DMC와 철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동네인데,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이다.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수색은 상암DMC의 반대말이다. 이 두 동네를 지하보도가 연결하는데 직접 방문해 보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가난한 수색에 사는 마이너리티들이 핍진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지켜주는 영화가 '춘몽'이다.

나는 이 영화가 인간에 대한 도리와 예의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탈북여성 예리(한예리 분)는 식물상태의 아버지를 차마 어쩌지 못하고 정성을 다해 돌보고, 한물 간 동네 양아치 익준(양익준 분)과 탈북자 정범(박정범 분)과 간질 환자이며 예리네가 세 든 집 집주인 아들인 종빈(윤종빈 분)과 여성이자 동성애자인 주영(이주영 분)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예리를 아낀다. 예리도 이들을 육친처럼 여긴다.

이들 각자가 처한 사회적 처지와 개인적 환경은 불우하고 불행하다. 식물상태의 아버지 외에는 사고무친인 예리는 주막을 하며 고단한 삶을 견딘다. 우연히 본 사주는 그녀의 미래가 우호적이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고아인 익준은 동네 건달 무리 중에서도 마이너리티처럼 보인다. 그에게 밝은 미래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악덕 사장에게 임금을 체불당한 탈북자 정범이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재개발을 앞둔(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집 주인의 아들인 종빈이 그나마 그들 중 나은 처지지만, 종빈은 간질을 앓고 있는데다 지능도 떨어져 보인다. 장애가 있는 종빈이 부모 슬하를 벗어나는 순간 종빈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신세가 될 것이다. 동성애자인 주영은 걸어 온 시간 보다 걸어 갈 시간이 훨씬 많겠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녀의 앞길은 험난할 것이다.

어딘가 망가지고 부족하며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예리와 익준과 정범과 종빈과 주영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 준다. 익준과 정범과 종빈은 예리의 아버지를 돌보고, 주영은 예리가 없는 사이에 주막 카운터를 맡고, 익준과 종빈과 예리는 임금을 못받는 정범을 위해 악덕 사장(김의성 분)과 단판을 짓고 결국 정범의 체불임금을 해결해준다. 예리는 주막 3인방(익준, 정범, 종빈)을 험담하는 손님들을 내쫒는다.

예리와 익준과 정범과 종빈과 주영은 비록 부유하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정서적 공동체 속에서 일상을 즐기며 살았다. 그리고 그 일상은 예기치 않은 이별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 이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마지막에 컬러로 바뀌긴 하지만 〈춘몽〉은 흑백영화다. 흑백영화가 주는 깊고도 포근한 질감에 내 마음도 따스해졌다. 〈춘몽〉은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며, 감독이 지닌 사유의 깊이와 영화 형식에 대한 고민의 넓이가 영화의 질을 결정적으로 규정짓는다는 걸 증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춘몽〉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실망스럽다는 건 결코 아니다. 실망은커녕 배우들의 연기는 한결 같이 경탄스럽다.

일찍이 평론가 김현은 이성복의 시를 '따뜻한 비관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장률의 〈춘몽〉에도 '따뜻한 비관주의'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