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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과 '엽기'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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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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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형벌이 있다.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준 형벌인데, 무덤을 파고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꺼내어 시신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한다. 나는 이제껏 부관참시가 조선시대에만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부관참시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현대판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는 건 백남기 농민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백남기 농민은 비명횡사한 이후에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하며 구천을 헤매고 있다.

경찰을 비롯한 국가권력은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사죄는 고사하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밝히겠다며 부검을 강행할 태세고,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선하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이 '병사'라며 연명치료를 방해(?)한 유족들을 비난했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극우단체마저 등장했다.(극우단체 "백남기 세 자녀 살인죄로 검찰 고발")

이게 끝이 아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당해 의식을 잃던 순간 현장에 있던 빨간 우비 차림의 남성이 백씨를 타살한 의혹이 있으니 이를 규명해달라는 수사의뢰서를 경찰에 제출한 단체들도 나타났다.(보수단체, 경찰에 백남기씨 타살의혹이라며 '빨간우의' 남성 수사의뢰) 이들은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자들이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너는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라고 의심 많은 도마를 꾸짖으셨다. 빨간 우비 타살설을 주창하는 무리들은 도마의 후예들이다. 단 이들은 보이는 대로 믿지 않고, 믿는 대로 본다.

어쩌다 한국사회가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진보는 고사하고, 민주는 고사하고, 상식은 고사하고, 인륜조차 사치인 사회가 되었을까? 어쩌다 한국사회가 희생자와 피해자가 공격당하고 조롱당하고 모욕당하는 세상이, 가해자는 만고에 떳떳한 세상이 되었을까? 패륜과 엽기와 저주와 증오가 한국사회를 뒤덮게 되었을까?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지닌 인격은 그 시대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성취이건, 상처이건.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 아니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것이라면 그 최고 지도자의 인격은 오로지 자연인의 것에 머물진 않는다. 그럴 때 최고 지도자의 인격은 그 시대를 살고 그 지도자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집단적 인격을 표상하고 대표한다.

즉 그 최고지도자는 그 혹은 그녀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집단적 인격의 육화(肉化)라고 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의 인격은 그 혹은 그녀를 지지하고 지탱하는 유권자들의 인격과 정확히 조응하고 격렬하게 교감한다. 우리는 지금 짐승의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고, 그 짐승의 시간은 박근혜의 재임기간과 일치한다.

*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