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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후안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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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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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한 정기국회 개회사에 새누리당이 극력반발하고 나섰다. 아래에서 보듯 정세균 의장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우국충정으로 가득하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수장으로서는 대통령의 폭주와 독선, 그로 인해 혼란에 뒤덮인 대한민국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최근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국민의 공복(公僕)인 고위공직자,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티끌만한 허물도 태산처럼 관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실질적으로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 긴장상태 고조, 그리고 이에 맞선 북한의 지속적인 무력시위로 동북아 전체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핵 문제는 동북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당사국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도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 하고, 그에 따른 대화나 행동도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파국을 막을 수 있고, 또 북핵 문제를 넘어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의 이니셔티브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한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 또한 깊이 고려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됨으로 해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응분의 제재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남북이 극단으로 치닫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진정 놀랍게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 의장의 발언에 격렬히 항의하며 집단 퇴장했다. 뿐만 아니라 밤에 의장실로 몰려가 정 의장을 둘러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한밤의 점거' 정기국회 첫날밤 국회의장실에선 무슨 일이...)

나는 무슨 조폭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국회의장을 여당의원들 다수가 심야에 몰려가 윽박지른 건 동서고금에 희귀할 듯 싶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이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평소 새누리당이 해 온 행태를 보면 별반 신뢰가 가지 않는 주장이다.

새누리당이 정세균 의장을 압박하면서 보인 행태들의 백미는 '사퇴촉구결의문'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결의문의 백미 몇 구절을 직접 인용하겠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회는 무너졌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70년간 이 땅의 의회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한 선배 정치인들의 모든 피와 땀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70년간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든 정세균 국회의장의 폭거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우리 새누리당 의원 일동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새누리당의 낯두께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두껍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의회민주주의를 뿌리채 흔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리며, 헌정질서를 유린한 정당은 지금의 새누리당을 포함한 그 전신 정당들 아닌가? 다른 거 다 떠나서 두 번의 군사쿠데타로 헌정질서를 철저히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며, 의회민주주의를 교살시킨 세력이 지금의 새누리당의 뿌리 아니던가 말이다. 이쯤되면 새누리당을 후안무치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좋을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