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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계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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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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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감옥에 간 진경준과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우병우의 공통점 중 눈에 띄는 것은 시험을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게 잘 봤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전쟁으로 묘사되는 대학입시의 진정한 승자들이다. 서울법대에 진학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사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20대 중반에 검사로 임용됐다. 내가 20대 초반에 어떤 처지였고,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들의 성취는 자못 놀랍다. 검사로 임용된 이후에도 우병우와 진경준은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다. 그리고 진경준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우병우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한국사회가 진경준, 우병우 케이스에서 깨닫고,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고쳐나가야 할 것은 참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검찰 권력의 견제 및 분산이다. 좀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우병우와 진경준 사태가 대한민국 교육의 완전하고도 총체적인 실패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교육의 정의는 1) 지식을 가르치고 품성과 체력을 기름 2)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심신을 발육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계획적·조직적으로 행하는 교수적(敎授的) 행동(가정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 등이 있음)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로 상징되는 교육은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반대말처럼 읽히기 일쑤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란, 무엇보다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의 계급을 결정짓는 일종의 생존 게임이다. 상황이 더 고약한 것은 이 게임에서 패배한 자들에게는 재기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잊지 마라, 이 게임은 단판 승부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단순히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회의 주류(main current)에 편입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의미이고, 은폐된 카스트 제도의 맨 윗 계급에 속할 자격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오래 전부터 한국 사회는 이른바 'SKY' 출신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사회적 부와 권력과 담론을 그들 사이에 교환하는 구조로 고착되어 왔으며, 이러한 구조는 더욱 더 공고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학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울대가 위치하고 있고, 그 밑으로 많은 대학들이 서열화되어 있으며, '학력 피라미드'의 밑바닥에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이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위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출신 학교가 어디냐에 따라서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가족의 사회적 운명이 거의 결정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우병우와 진경준은 학벌천국 대한민국의 최강자들이었고 ,시험만 잘 본 시험기계들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좋은 세상,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검사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공익과 사익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 따위가 이들에게 있었을까? 없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내지 예비 엘리트들이 우병우 등과 얼마나 다를까? 대한민국 교육을 이대로 두면 우병우 등의 출현을 막을 길이 없다. 우병우와 진경준은 미시적 합리성 혹은 도구적 합리성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거시적 합리성, 반성적 합리성의 지도를 받지 못하는 미시적 합리성과 도구적 합리성은 자주 사회적 흉기로 변한다.

진경준과 우병우는 암기위주의 시험성적만으로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른 보상을 하는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했음을 증명한다. 암기위주의 시험성적 이외의 요소로 인간의 됨됨이와 능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경제적, 상징적 차원에서)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