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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받는 민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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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한 '민중은 개· 돼지'발언이 해일처럼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나 기획관이 경향신문 기자들과 만나 한 대화 내용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충격적이다. 식상한 감이 있지만 나 기획관이 경향신문 기자들과 나눈 육성을 복기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나향욱 정책기획관)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해 웃음)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 <내부자들>이다.

"아, 그래 <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 그게 무슨 말이냐?(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 1% 대 99% 할 때 그 99%?

"그렇다."

- 기획관은 어디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돼지···신분제 공고화해야"(경향신문)


나 기획관의 생각은 신분제가 고착된 절대왕정시대의 지배계급의 생각과 완벽히 동일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고 왕후장상의 씨로 태어난 1%의 사람이 천민으로 태어난 99%를 다스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간주되었던 것이 민주공화정 이전의 인류 역사였다.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신분제에서 이동이 가능한 계급제로의 변화, 주권이 왕이나 소수 귀족들의 수중에서 민중들의 손으로의 이전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피와 희생으로 얻은 인류의 소중한 성취다. 나 기획관의 인식과 발언은 인류가 누대로 힘겹게 쌓아온 업적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나 기획관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사회 메인스트림 중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 기획관과 같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기자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발언한 적은 없었다. 나는 나 기획관의 발언이 징후적 사건이라고 본다.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에 속하는 사람들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기자들에게 서슴없이 할 만큼 공적 윤리의식 내지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신호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교육부 정책기획관(고위공무원단 2~3급)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대학구조개혁 같은 교육부의 주요 정책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보직이라 한다. 나향욱 같은 사람이 앉아있을 자리가 아니다. 나 기획관은 민주공화국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며, 특수계급의 창설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나향욱 기획관은 즉각 파면되어야 한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교육부가 그리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을 직접 지시해야 한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도 나향욱 기획관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 기획관의 인식과 발언이 한국사회에 주는 긍정적 메시지도 있다. 메인스트림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민중을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신분제의 부활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를 민중들이 알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말로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거든 99%에 해당하는 민중들이 흔들리는 민주공화국을 안정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