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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박근혜 때문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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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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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 노무현이 참여정부의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 간 입 달린 사람들은 죄다 하던 소리다. 물론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의 과점언론이 앞장 섰지만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일 리 없다. 엄밀히 말해 노무현이 잘못한 일, 노무현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책임져야 할 일을 대상으로 노무현을 비판하건 비난하건 해야 맞다.

민주화 이후 모든 면에서 최악의 대통령이 분명한 박근혜라 할지라도 '모든 게 박근혜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일을 잘 되게 하거나, 모든 일을 나쁘게 만드는 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서는 모든 게 박근혜 때문이라고 평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참사의 예방에 완전히 실패한 박근혜 정부는 구조에도 철저히 실패했다. 사건의 예방과 구조에 완벽히 실패한 정부가 할 일은 사건의 원인을 실체적으로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며, 사고의 재발을 막는 시스템을 완비하고, 사망자와 부상자, 잠수사 등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적정한 배상을 하며,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 등이었다.

우리가 신물나게 봐왔듯이 그런 일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데는 철저히 무능했던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일과 유가족을 공격하는 일, 세월호 참사를 진영논리로 치환해 대한민국을 심리적 내전 상태로 만드는 데는 유능하다.

정부는 급기야 6월 30일자로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한의 종료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진실규명 그날까지!" 특조위 출근길에 유가족들 눈물) 정부의 한도 끝도 없는 방해에 막혀 특조위가 세월호 침몰과 구조실패의 원인에 대해 밝혀낸 것은 미미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아랑곳 없이 정부는 파견 공무원을 원대 복귀시키고 특조위가 요청한 하반기 예산도 배정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서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 중심에 박근혜가 있다. 박근혜가 아니라면 세월호 사태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와 방침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유독 기억나는 건 침몰 다음 날 진도 체육관을 방문했을 때와 안산의 합동분향소를 참배했을 때 박근혜가 보인 얼굴 표정과 태도다. 박근혜는 시종 무표정했다. 슬픔과 통곡과 비탄의 해일 속에서 오직 박근혜 홀로 초연했는데, 그 초연함은 국정을 책임지고 상황을 장악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냉점함이나 침착함이 아니었다. 최고의 고통과 슬픔은 그녀만 비껴가는 것 같았고, 그녀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가 끝난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 이후 박근혜는 세월호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세월호에서 비명횡사한 304개의 우주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견디는 유족들은 박근혜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존재들이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최소한도의 연민이나 긍휼을 느낀다면 박근혜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박근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걸 한사코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녀의 가공할 무지나 퇴행적 역사인식, 책임윤리의 파탄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박근혜가 마음이 너무 아픈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거나 헤아릴 수 없다. 마음이 너무 아픈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 나라가 어떻게 된다는 걸 우리는 뼈 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수업료가 너무 비싸다.

* 뉴스타파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