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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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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아는가. 우리 역사에 전해지는 고구려판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난한 집 남자와 부잣 집 딸의 절절한 로맨스가 장난이 아니다.남자는 그냥 가난한 집 남자가 아니라 생김새와 행동이 우습다고 이름난 바보 온달이다. 상대 여자는 나라에서 가장 귀한 몸인 임금의 딸 공주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단순히 신분을 초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넘기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다. 온달과 평강공주가 세상을 떠난 지 대략 600년 뒤인 1145년 김부식 등이 고려시대 인종의 명을 받아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역사를 정사(正史)로 기록한 삼국사기에 이 둘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제45권 열전 제5 -온달조'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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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이 수련했다고 알려진 온달동굴 온달과 평강공주 모양의 종유석>
충북 단양 ⓒ이태형(8월 답사 직접촬영)

김부식은 왜 '바보온달'을 자세히 기록했을까?

삼국사기가 편찬 될 당시의 고려사회는 국교는 불교를 택하고 있었지만 국가통치이념은 유교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김부식은 그 누구보다 유학을 숭상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스스로를 공자의 제자라고 여겼다. 그가 편찬한 삼국사기 또한 유교의 중요개념인 군주의 자세, 신하의 충성됨, 부모에 대한 효 등의 관점에서 기술되었다. 그런데 신분을 초월한 남녀상열지사를 열전에 담다니!

처음 의구심을 품었을 때 사대부를 자처하는 김부식도 온달과 평강공주의 로맨스에 크게 감동을 받아 이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개연성 없는 상상을 해보고 홀로 피식했던 적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차마 덮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야기를 '바보설화'로 라도 풀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가 박혁문의 「온달전」속에 나타난 온달'

그러다 얼마 전 이러한 내 의구심을 풀어 줄 만한 책 한권을 접했다. 역사소설가 박혁문의 소설 '온달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해석이 담겨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소설을 가리켜 팩션 즉 Fact+Fiction 이라고 부르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소설' 이라고 부르는 만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에게 익숙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복기해보자. 삼국사기 온달조에 기록된 대략적인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다.

때는 6세기 고구려 25대 평원왕시기. 당시 평원왕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평강공주이다. 평강은 어릴 적부터 자주 눈물을 보여 별명이 울보평강이었다. 임금은 평강이 울 때마다 그녀를 놀리며 '네가 늘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서도 사대부의 아내는 되지 못하겠으니 바보온달에게나 시집 보내야겠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이후 평강이 혼기가 차니 평원왕은 평강을 귀족가문에 시집보내려했다.

그때 평강이 당차게 혼사를 거부하며 한마디 던진다.

대왕(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 무슨 연유로 이전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일반사람)도 오히려 식언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하신 분께서 말씀을 바꾸십니까? 저는 온달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하였다.

이러한 평강의 말에 평원왕은 분노했고 평강을 내 쫓았다. 평강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값비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매달고 궁궐을 나섰다. 온 장안에 바보라고 소문난 온달이었던 만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찼던 평강은 눈 먼 온달의 어머니를 만나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라며 인사를 올렸고 당황한 온달과 온달의 어머니는 극구 사양한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한 끝에 결국 온달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후 온달과 평강부부는 평강이 궁에서 들고 나온 보석을 밑천 삼아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다.

평강은 남편 온달이 무인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야윈 말을 구해 살찌워 명마로 만들고 남편이 무예를 연마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온달은 사냥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장인인 평원왕의 눈에 들게 된다. 이후 중국 북부를 통일한 북제의 무제가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온달은 전투에 출전해 큰 공을 올리게 된다. 평원왕은 비로소 온달을 정식 사위로 인정하고 대형이라는 벼슬까지 하사한다.

삼국사기는 이를 '온달에게 벼슬을 내려 대형으로 삼으니 이후 왕의 총애가 더욱 깊어지고 위엄과 권세가 날로 성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온달은 고구려사회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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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이 북제의 침입에서 전공을 세운 '안시성 터' 수풀이 무성하다>ⓒ이태형(7월 답사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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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령성 해성시 영성자성(안시성) 터 표지석> ⓒ이태형(7월 답사 직접촬영)


'장군 온달의 허망한 죽음과 움직이지 않는 상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평원왕이 죽고 평원왕의 아들 영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온달은 영양왕에게 청한다.

'신(臣)이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과 그 이 남쪽을 되찾겠으니 출정을 허락하소서 만약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살아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결기를 보이고 떠난 온달은 다시 평양성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신라군과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싸우다가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이후 고구려 군사들이 온달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려하는데 상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삼국사기는 평강공주가 친히 장사지로 와 그의 관을 어루만지며 '삶과 죽음이 이제 정해졌으니 편히 가십시오.'라고하자 비로소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분을 초월했지만 슬픈결말을 맞이한 로맨스에 대한 재해석'

온달과 평강의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는 여느 흔한 사랑 이야기 못지않은 가슴 먹먹한 새드엔딩 결말이다. 자, 다시 이야기의 얼개를 돌아봤으니 '바보 온달'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온달전」을 쓴 박혁문 작가는 온달을 외모를 기록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재해석하고 있다.

삼국사기 온달조에 나오는 온달의 생김새는 다음과 같다. 「용모용종가소(容貌龍鐘可笑) '생긴 모습이 파리해 우스웠다.'」 바로 뒤에는 「중심칙행연(中心則啈然) '마음씨는 명랑하였다.'」

박혁문 작가의 해석은 이렇다.

얼굴빛이 파리한 경우는 대부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근심걱정이 많아서다. 바로 뒤에 마음씨는 명랑하다고 했다. 명랑한 사랑이 근심이 많아 얼굴이 파리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생긴 모습이 파리해 우스웠다.'라는 의미는 '그 피부가 고구려인들과는 다르게 희었기 때문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즉, 온달은 생김새가 달랐고 말이 어눌해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 할 수 있는 것이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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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문 저작 「온달전」> ⓒ이태형

고구려인이 아닌 기기시족의 후예 '이민족 온달'

작가는 온달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온달을 고구려인이 아닌 이민족의 후예로 상정했다. 551년 돌궐의 대규모 고구려 침공 때 포로로 잡힌 돌궐족의 한 갈래인 기기시족(키르키스족)으로 해석한 것이다.

즉 온달은 고구려인이 아닌 이민족 출신으로 고구려의 비주류 집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주류 온달이 고구려 최고의 실력자인 왕의 딸과 어떻게 결혼 할 수 있었을까?

고구려는 계루부, 관노부, 소노부, 순노부, 절노부 5부족 연합 국가였다. 왕위는 계루부가 계승했으나 왕권이 약할 때는 다른 부족들의 권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평원왕이 왕위에 있던 6세기는 남쪽의 신라가 치고 올라오고 북쪽에서는 북제가 압박을 가하는 고구려 건국 이래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왕권의 강화를 위해 무력에 입각한 새로운 세력과의 결탁 없이는 왕권을 온전히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고구려 침공 이후 포로로 잡혀 고구려의 대거 정착하게 된 돌궐족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 돌궐족 중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기기시족의 우두머리가 바로 온달이라는 것이다.

즉 평강과 온달의 혼인은 고구려 왕실로서는 새로운 왕실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온달이 고구려왕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왕실을 엄호하는 새로운 권력집단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당시 고구려사회가 다민족 연합국가 형태로 예족, 맥족, 거란, 말갈, 돌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고 각 부족이 고구려 5부족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을 비춰볼 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추리가 아닐까한다.

이런 추리로 접근을 해보면 서두에서 언급했던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국의 한족을 제외한 모든 이민족을 오랑캐로 여기던 중화주의에 입각해서 쓰여 졌기 때문에 비록 큰 공을 세웠더라도 온달의 출신성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유교의 핵심 개념인 충(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절체절명의 고구려를 구한 온달의 활약은 고구려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구국의 충신으로서 어떻게든 기록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박혁문 작가는 고구려 역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고구려는 다민족 연합국가 였다. BC 37년 주몽이 졸본 땅에 고구려를 세운 뒤 광개토대왕 시기를 거치며 부여, 옥저, 동예, 말갈, 거란 등을 복속시키며 영토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민족들을 고구려 사회 속으로 포용해 다민족 연합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구려 지배집단이 패권주의에 빠져 고구려의 개방과 포용 정신을 잃어버리고 분열 되었다. 이러한 내부분열은 곧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고 고구려 한반도 지배력 약화를 가져온 한강유역 영토의 상실로 이어졌다. 이후 고구려는 귀족 사회의 분열과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그 국운을 다하고 만다.

소외받고 배척받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 온달'

그런 점에서 이 소설 속 '온달'과 '평강'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박혁문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온달의 유년시절을 고구려 사회 속에서 가장 소외받고 배척받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외모가 고구려인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말이 조금 어눌하다는 이유만으로 온달은 평양성에서 소문난 바보 천치였다.

소설을 읽다보면 온달의 분노와 절망감이 어떠한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가치를 알아본 평강을 비롯한 소설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조력자들을 통해 온달은 이 분노와 절망감을 환희와 희망으로 승화시킨다.

그들의 도움과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온달은 비록 이민족이었지만 전공을 세워 왕실의 사위가 되었고 지배계층의 인정을 받아 역사 속에도 당당히 기록되었다. 그의 시작은 이민족이었을지 몰라도 끝은 분명 당당한 '고구려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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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의 설화가 서려있는 온달산성> 충북 단양 ⓒ이태형(8월 답사 직접촬영)

얼마 전 소설 속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의 배경이 된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에 올랐다. 산비탈에 우뚝 솟은 온달산성과 산성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한강은 아름다웠다. 온달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2017년을 사는 우리에게 온달과 평강이 전하고자 하는 말'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리려 간 곳에서 나의 뇌리에는 우리사회에 곳곳에 있는 수많은 온달들이 스쳐지나갔다. 우리의 아픈 역사 때문에 조국을 등져야했던 해외동포의 후손들, 국제결혼으로 태어나 우리와 생김새가 다른 다문화 가정 아이들, 저마다의 사연으로 부푼 꿈을 앉고 한국으로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

조금만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일부 누리꾼들이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을 대놓고 표방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세계화가 현실이 된 오늘날 우리는 우리와는 많이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만 한다. 다문화 사회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인 조류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온달들을 바보로 놓아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소설 「온달전」의 한 목차 '바보평강과 온달' 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소외받고 배척받는 이들 곁에 그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묵묵하게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평강'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