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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처우 개선 없이 국방력 강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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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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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병사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나 군은 조직적 특수성(특별 권력관계)을 이유로 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해 왔고, 병영의 장막 뒤에 숨어 각종 사건을 축소·은폐하기에 바빴다. 창군 이래 수십 년간 군인은 이 땅의 '이등 시민'이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기원을 두고 있는 '제복 입은 시민'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나치 군인을 부정하는 개념어로 확립되었고 군인도 시민과 동등한 시민적·정치적·사회적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군은 두 번의 쿠데타에 군대가 동원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며 안보 위기론과 색깔론을 명분 삼아 시민의 인권을 유린하며 권력 남용을 정당화해 왔다. 이로 인해 군대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었고 시민들의 불신 속에 대군불신(對軍不信)이라는 사자성어까지 생겼다.

2014년 육군은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폭로로 인해 외적의 침입이나 내란이 아닌 상황에서 육군참모총장이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당시 군에서는 인권침해가 횡행하여 사기·전투력 저하와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고 심지어 '이래서야 국가를 어떻게 믿고 자식을 군에 보낼 수 있느냐'는 여론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인권단체들이 입법 청원한 군인복무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현재 시행 1년을 맞이하고 있다. 군인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권리'를 법률에 명문화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된다. 법 시행을 통해 군인 스스로 그동안 불분명했던 기본권 보장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 넓은 의미에서의 기본권 보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인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징집된 시민이다. 따라서 국가가 이들의 사회권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군 병력 유지 및 강화 차원에서 본다고 해도 적절한 숙식과 의복의 제공, 진료권 보장은 건강한 병력 유지에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현재 군은 막대한 예산을 사용함에도 교도소 재소자보다 못한 급식, 비현실적인 병사 월급, 부실한 의료 장비와 의료진, PX 민영화, 질 낮은 군복과 군화, 열악한 복무 여건 등 군인들의 사회권적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에 내년도 병사 월급을 기존 21만원에서 최저임금의 30% 수준인 40만원으로 인상시켰다. 또 2022년까지 최저임금 50% 선까지 인상하기로 했는데 이때 병장 월급은 67만원이 된다. 2013년 군인권센터가 육군 병사 3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군인권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월급에 대해 51%가 군 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집으로부터 용돈을 받는 병사는 72%에 육박했다. 군 복무가 가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애국페이를 강요하는 것은 중단돼야 한다.

우리나라 국방비의 대부분이 무기에 투자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장병 복지나 복무환경 개선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권적 기본권은 자유권적 기본권과 달리 정부가 정책적으로 예산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개선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의료·복지 예산의 비중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 군대 내 인권 상황 개선이 곧 병력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군인의 처우에 인색하면서 국방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년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젊음을 희생하며 국방의 의무에 응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군에서 배워 오는 것은 자긍심이 아니다. 인간 이하의 대우 속에 불합리에 굴종하고, 불의를 인내하는 일에 익숙해질 뿐이다. 군은 '애국'이란 명분으로 거대한 부조리를 재생산한다. 이렇듯 존엄성을 훼손당한 제대 군인들이 끊임없이 사회로 던져지는 현실에서 국방의 의무는 절대 신성할 수 없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는 화려한 수사나 요란한 신무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군인의 자긍심에서 비롯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여망은 높았지만, 군은 늘 안에서부터 어깃장 놓으며 개혁 동력을 무너뜨려왔다. 과거 10년간 누적된 군의 적폐를 모두 청산할 수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 첫 국방장관은 장병 인권과 군 복무의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병영 혁신'을 제1국방개혁과제로 삼아야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