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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갈리와 수쿠마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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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가 온 다음 날에는 꼭 정전을 겪는 동네였다. 할머니는 제일 큰 손주에게 돈을 쥐여주고 가겟집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한 줌 정도의 기름이 담긴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 기름으로 석유 화로에 불을 피워 구겨진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고, 좁은 부엌 한구석에 돌돌 말려 있는 웅가(unga; 옥수수 가루) 봉투를 열었다. 어두운 집의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옅게 흩날리는 가루의 입자들이 보였다. 할머니는 작은 플라스틱 컵을 집어넣어서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퍼내어 끓는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물이 다 흡수되고 반죽에 찰기가 생길 때까지 가루를 넣고 주걱으로 젓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물기가 사라지면서 단단해진 하얀 반죽을 평평하게 두들기면 완성이다. 할머니가 다시 큰 손주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가 작은 두 손으로 들고 나오는 부서진 플라스틱 접시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얗고 둥그스름한 우갈리(ugali)가 올려져 있다.

뜨거운 우갈리가 잠시 식는 동안에 할머니는 또 다른 냄비에 식용유를 넣고 깨끗이 씻어서 잘게 자른 짙은 초록색의 채소를 볶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도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는 이름을 가진, 영양가도 많고 값이 싸서 가장 많이 먹는 채소, 수쿠마 위키(sukuma wiki)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는 양파와 토마토, 그리고 가끔은 고기도 함께 넣어서 요리하지만, 할머니의 부엌에는 간을 맞추기 위한 소금이 전부다. 채소가 푹 고아지는 느낌으로 진득하게 익으면서 진한 초록색의 국물이 흥건하게 배어 나오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작은 양철집 안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이 가족이 하루에 한 번, 또는 운이 좋을 때는, 두 번 먹는 식사가 완성된다.

세 명의 손주들이 조잘거리면서 양동이에 담긴 물로 손을 씻는 동안 할머니는 둥근 우갈리 덩어리를 케이크처럼 잘라서 가장 큰 조각을 손님의 접시에 놓는다. 얼마 되지 않는 수쿠마 위키도 손님의 접시에 가장 많이 올라간다. 모두들 우갈리를 한 점 떼어내서 손으로 먹기 좋게 주무른 다음 진한 수쿠마 위키 국물에 적셔서 입에 넣는다. 따뜻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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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좀 나은 집에서 먹었던 우갈리와 수쿠마위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이름은 달라도 우갈리와 같이 곡식가루를 끓인 물에 반죽해서 만든 주식이 많다. 케냐와 탄자니아에서는 옥수수 가루가 가장 흔하지만, 다른 나라나 지역에 따라서 수수나 기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케냐에서 처음 먹었던 식사도 우갈리였다. 식감이 약간 거칠고 단맛이 없다는 차이가 있지만 뭔가 백설기 같다는 느낌이 나서 자주 사서 먹고 또 얻어먹었다.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곱게 잘려서 나온 것을 먹어보기도 했고, 가정집에서 소박하게 만든 것을 먹어보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길가의 공사판에 있는 간이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솥뚜껑만 한 냄비에 산처럼 수북하게 만들어 거칠게 떼어낸 우갈리 덩어리를 먹어보기도 했다. 땀과 먼지를 뒤집어쓴 공사판 일꾼들의 틈바구니에 앉아서 먹었던 우갈리는 유난히 뜨끈하고 든든했다.

우갈리에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는 케일과 비슷한 모양새의 수쿠마 위키가 가장 대표적이다. 수쿠마(sukuma)는 스와힐리로 "밀다"라는 뜻이고 위키(wiki)는 한 주를 의미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구할 수 있고 또 돈이 많이 없어도 한 주를 버티게 한다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채소다. 그런데 얼마 전에 미국에서 만난 케냐 친구는 요즘 사람들의 형편이 어려워서 수쿠마 위키가 아니라 수쿠마 므웨지(mwezi: 한 달)라는 농담이 유행이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따라 웃어 넘기기는 했지만, 요즘 말로 "웃프다"라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할머니와 손주들의 식탁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갈리와 수쿠마 위키 한 접시가 여전히 올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