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선현 Headshot

돕는 사람도 도움이 필요하다 | 파울 클레 '보호받는 식물'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2016-07-01-1467355336-1506921-_tlranf.jpg

파울 클레 <보호받는 식물>

파울 클레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 고흐가 많이 그렸던 밤하늘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가운데 형상이 나무이다. 그리고 양쪽에 두 사람이 서 있다. 나무를 보호하는 이들은 나무와 똑같은 위치에 발을 두고 있다. 과도하게 나무를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묵묵히 나무 옆에서 동화되어 서 있을 뿐이다.

약한 이들에게 다가갈 때, 때론 돕겠다는 마음이 혹여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물에게 다가가듯 옆에서 관심을 갖고 그들이 다치지 않게 하는 일, 재난 시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심리지원이 내가 했던 일이고 앞으로 계속할 일이다.

클레 그림에서 나무는 두 사람의 보호 아래 더 예쁘게 빛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두 사람이 계속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나무가 안전하게 성장한다면 안심하고 각자의 위치로 또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무에게로 이동할 것이다.

세월호 수색작업에 참여해 주검을 수습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가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정확한 사인은 파악 중이지만, 사망 당일 새벽 지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겼다고 한다.

재난, 재해 상황의 심리관리 대상에는 직접 피해자 외에도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 구조요원 등 재난, 재해로 인해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는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김 잠수사의 경우 구조요원에 속한다. 세월호 구조에 참여한 다수의 민간 잠수사들이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 현업에 복귀한 분들도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은 보상은 물론, 신체적·정신적 치료조차 충분히 받지 못했다. 잠수사 업계에서 기피인력으로 낙인 찍혀 오랜 기간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2주기가 지난 현재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만성화, 고착화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트라우마 역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쉬워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립감이 심해질 수 있다.

이번에 돌아가신 김 잠수사의 경우에도 국정감사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며 진실규명에 애썼지만, 밝혀지는 것도 없이 지난한 싸움을 해오며 고립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심리적 죄책감이나 우울증상이 심한 경우 초조함과 불안감, 분노 등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회복이 더디면 치료에 대한 불신도 높아질 수 있다. 신체적 손상을 입은 경우나 동료나 가족을 잃은 경우에는 애도반응이 지속된다. 소방관이나 경찰관, 군인 등 위험 상황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군의 경우 자신의 신체 손상이나 동료의 죽음에 대해 상당한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한 예이다. 회복에 대한 희망을 잃는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흔히 재난을 직접 겪은 당사자만 트라우마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재난 목격자,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광범위하다. 이번에 돌아가신 잠수사는 사건 수습 과정에서 많은 시신을 운반했다. 생전에 불면, 감정 조절의 어려움 등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을 겪었다. 몇 해 전 시신과 생존자를 운반하던 소방관 심리지원을 했을 때 만난 소방관들이 겪었던 증상과 같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당시 사고현장을 있는 듯한 간접경험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불쑥불쑥 일상을 괴롭히는 정신적 고통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재난, 재해 등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은 물론, 사회적 지지와 긍정적 인간관계 등이 필요하다. 가족과 지역사회의 지지는 부정적 감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울 클레의 그림처럼 우리가 고통 받는 그들을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이 우리를 보호해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