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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 아니다 | 조지 클로젠 '울고 있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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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로젠, 울고 있는 젊은이, 1916년, 캔버스에 유채

삭막한 들판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젊은 여인이 엎드려 울고 있습니다. 하얀 피부와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기억, 머릿속에서 재편집되고 구성된 기억의 파편들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너무나 힘들게 합니다. 억제되고 억압된 기억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방해하는 요소로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다시 나타나며, 그 이후를 통제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합니다.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어 홀로 울고 있는 이 여인의 슬픔을 통해 우리는 상처의 아픔을 공감합니다.


저에게 데이트 폭력으로 상담하러 오신 분들 중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 기억이 납니다. 당시 그녀는 회사의 복잡한 일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서 남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하였답니다. 그 뒤 남자 친구가 회사로 칼을 들고 와 위협하였고, 그 과정에서 회사 동료가 막다가 다쳤습니다. 다행히 곧바로 신고를 해서 남자 친구는 구속되었지요.

하지만 여성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구속시켰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아직도 남아 있는 그에 대한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요. 그녀는 당시의 상황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회사에 대한 걱정이 늘었고, 술을 많이 마시거나 잠을 못 자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치료에 꾸준히 참여했고, 평소 성격이 밝고 적극적이어서 회복이 빨랐습니다.

데이트 폭력이란 서로 교제하는 미혼의 동반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위협 또는 실행입니다. 성폭행, 성희롱은 물론 협박, 언어폭력, 정신적·물리적 폭력, 스토킹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데이트 폭력 신고건수는 7천 건이 넘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2시간 넘게 감금하고 폭행한 남성, 이별을 고한 연인의 얼굴에 염산을 쏟고 달아난 남성 등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지난 6년 사이에 건수는 52% 증가하였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개월간 폭력 집중 기간에 신고건수는 1,279건이고, 더 놀라운 건 가해자 절반 이상이 폭력 전과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폭력은 연인 관계에서도 결혼을 해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납니다. 가해자들이 말하는 범행동기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들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라고 말하지요.

여자 아이에게 무례한 남자 아이를 보고 어른들은 "괜찮아, 제가 너 좋아서 그래"라고 말합니다. 성인이 된 여자 아이는 남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해도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어릴 적 들었던 말을 떠올립니다. "괜찮아, 제가 너 좋아서 그래." 어린 시절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자란 아이와 피해 아이에게 별거 아닌 듯 말하는 잘못된 교육이 훗날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큰 범죄가 되어서야 알립니다. 초기에 신고해야 하는데 신고를 해도 기관에서는 사랑싸움 정도로 여기고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처하기도 합니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대인관계가 취약한 20~30대가 연인 등 타인과 갈등이 생겼을 때 욱하는 마음으로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위도 점점 높아져서 살인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인이 이별을 통보하거나 다투거나 할 때 순간의 감정으로 연인이나 그 가족에게 폭력 이상의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애정과 배신감이 복합되어 스스로 감정조절이 힘든 상황까지 가지요.

데이트 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폭력은 어떤 이유건 용서할 수 없음을 알려야 합니다. 둘째, 믿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폭력의 흔적인 기록이나 증거물을 남겨야 합니다. 넷째, 단둘이 만나지 마세요. (출처: 한국 여성의 전화 책자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우, 침착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 신고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아니지만,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린, 최근 섬마을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여교사의 대처 능력은 좋은 예입니다.

피해자에게 치료지원과 심리안정회복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가해자에게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철저한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들의 재범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 칼럼을 쓰다 보니, 김소월의 시가 생각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라...

헤어질 때 서로 상처 주지 않고 행복을 빌어주는 건 어려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