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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언제까지나 OECD 노동분야 '개노답 삼형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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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익숙한 그림을 하나 보았습니다. 한 해가 흘러 데이터가 업데이트되었음에도, 그림의 내용과 결론은 익숙했습니다. 무슨 그림이었을까요? OECD가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의 일부로 조사하는 「초장시간 노동자 비율 국제비교 」인포그래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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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OECD (2017)

 이 숫자는 취업자 중 주당 60시간(한국 통계는 54시간 이상) 넘게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입니다. 노동통계의 강자 한국은 22.6%,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2위를 차지합니다. "형제의 나라" 터키가 간발의 차이로 1위네요. 역시 노동조건이 열악한 이웃 나라 일본과 한국의 격차는 무려 13.4%p입니다.

 이 통계보다 유명한 OECD 노동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이 수십 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해 오다가 최근 멕시코에 왕좌를 물려준 통계, 1인당 연간 노동시간입니다. 매년 이 수치가 발표될 때면 언론은 "韓 근로자 연간 근로시간 OECD 1위... 12년 연속" 등의 표제를 쏟아냈습니다. 항상 최상위 랭커인 멕시코와 한국, 터키를 묶어 "OECD 개노답 삼형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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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OECD (2017).

 두 지표를 함께 보면 이렇습니다. OECD 평균을 기준점으로 그래프를 4개로 분할하면, 한국이 속한 1사분면은 1인당 노동시간도 길고 초과근무자 비율도 높습니다. 일본이 속한 2사분면은 1인당 노동시간은 짧지만 초과근무자 비율은 높습니다. 그리스가 속한 4사분면은 노동시간이 길지만 초과근무자 비율은 낮고요. 선진국 다수가 속한 3사분면은 노동시간도 낮고, 초과근무자 비율도 낮습니다. 이래저래 한국과 '개노답 형제들'의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로축 값이 유사한 국가들 사이에도 세로축 값에 편차가 있습니다. 연간 근로시간이 높더라도 어떤 국가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 많이 일하고, 어떤 국가는 비교적 소수가 아주 많이 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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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 Statistics, OECD Better Life Index.

 그런데 이 삼형제의 우애는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초장시간 노동자 비율 통계는 아직 채 5년이 되지 않았으니, 2000년부터 발표된 1인당 연간 노동시간 추이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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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 Statistics.

 돌아보면 2000년 한국 수치는 충격적입니다. 당시 2위 멕시코보다 무려 200시간 더 일했습니다. 살인적인 수준이지요. 하지만 15년 동안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한국 노동시간은 극적으로 하락했습니다. 그때부터 함께 최상위 랭커였던 형제 국가 멕시코, 칠레, 그리스의 하락세와 비교하면 그 사실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한국은 여전히 "개노답 삼형제"의 일원이지만, 명백히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측면을 볼까요? 노동시간은 1인당 GDP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덜 일하는데, 국민소득도 함께 줄어들면 노동시간 감소를 마냥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림에 함께 나타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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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 Statistics.

 한국은 이번에도 역시 개노답 형제들과 함께 4사분면에 있습니다. OECD 평균보다 오래 일하고, 1인당 GDP는 적습니다. (ㅠㅠ) 1인당 GDP가 비슷한 스페인, 이탈리아에 비해 연간 400시간 더 일합니다. 노동시간이 비슷한 국가들과 1인당 GDP를 비교해 봐도 좋을 텐데, 노동시간이 비슷한 국가가 없습니다. (ㅠㅠㅠ)

 이 그림 역시 몇 국가를 뽑아 2000년부터 15년간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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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 Statistics. 글씨 색깔별로 연도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파랑(2000), 빨강(2005), 초록(2010), 노랑(2015)입니다.

 한국을 볼까요? 앞서 보았듯 연간 노동시간이 극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1인당 GDP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위치에서 헤매는 다른 개노답 형제들과는 다르지요. 물론 저 국가들과 한국을 단독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저 흐름이 앞으로 지속될지도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부터 15년간, 도중에 세계 금융위기라는 거시경제 충격을 받으면서 1인당 GDP 성장과 연간 노동시간 감소를 이루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변화의 속도는 더디지만 한국은 분명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OECD 통계가 발표될 때면 매년 개노답 삼형제를 못 면하는 것 같고, 내 주변은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다 논할 수 없지만 저는 앞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물론 발전해왔다는 사실,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한계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습니다. 개선이 필요하다면 비판해야 합니다. 지금껏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늦게 노동절을 기념합니다. 통계가 작성되기 전부터 저 급격한 하락, 또는 개선, 또는 발전을 위해 분투한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하여, 故 이한빛 CJ E&M PD의 명복을 빕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