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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 Headshot

한 남편의 출산일기 (2) 아내는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것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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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심장 소리를 들을 일은 거의 없다. 자신의 심장 박동수가 얼마인지, 산소포화도가 얼마인지, 굳이 체크하지 않아도 우리 몸은 24시간 잘 돌아간다. 적어도 병원에 갈 일이 없다면 말이다.

지난 8월, 첫 번째 글을 올리고 난 뒤 산부인과를 두 차례나 더 방문했다. 첫 산부인과 방문 당시 산부인과 과장님은 "다음번에 오면 아기 심장 소리를 들려드릴게요"라고 했다. 심장 소리를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병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태명도 지었다. '새싹이'라고. 무럭무럭 자라나라고 그렇게 지었다. '뿡뿡이' '쑥쑥이' 등을 물리치고 치열한 경합 끝에 간택됐다.

병원에 갔다. "보호자 들어오세요" 어두컴컴한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스크린에 태아의 움직임이 보인다. 임신 9주차로 접어들면서 0.91cm이던 태아는 2.12cm로 자라났다. 희미하게 머리와 몸통으로 구별되던 체형은 이제 손과 발까지 생기며 뚜렷해졌다. 심장 소리도 더 커졌고, 소리의 간격은 더욱 짧아졌다. 새싹이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실감이 났다.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엄지손톱만 한 존재가 나의 또다른 미래라는 걸 말이다.

임신 7주차의 초음파 동영상

그 사이 아내의 몸도 바뀌었다. 임신 4주 이전에는 없었던 통증이 찾아왔다. 아기가 자신의 집을 만들기 위해 골반을 넓히는 탓인지 꼬리뼈 쪽의 고통이 찾아왔다. 앉거나 설 때 아픔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2.1cm밖에 안되는 몸이 자신의 젖줄인 어미의 둥지 안에서 생명을 이어가겠다며 신체를 변화시키다니. 놀라운 일이었지만 산부인과 과장님의 말씀을 듣고는 "휴"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통증은 출산이 임박한 40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둘 다 멀뚱멀뚱 쳐다보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이제 임신 9주인데!

하루는 출근하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만에 곧바로 내렸다. 회사에서 근무하다 통증은 종종 찾아왔다. IT 회사를 다니는 탓에 프로젝트가 많았다.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았다. 때론 회식도 거나하게 열렸다. 부장이 따르는 술을 거부한 뒤 찾아오는 싸늘한 눈초리에 임신 사실을 밝힐까 말까 고민도 했다. '왜 말을 하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주변 사람들에게 으레 하는 이야기는 '아직 회사 이직한 지 2개월밖에 안돼서요'였다. 경력직이지만 3개월의 수습 기간이거니와 이직하자마자 생겨버린 아이 핑계를 대기에는 염치가 없어서였다. '몇 달만 있다. 가질 걸 ㅠㅠ' 하고 자책하는 아내에겐 '새싹이가 듣는다'며 나무라면서도 마음 한쪽은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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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얼굴과 팔의 모습이 보인다. 임신 9주차, 새싹이의 모습이다.

임신 초기는 유산 위험이 있어서 중기, 말기보다 지나칠 정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산모의 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 보니 오해도 많이 생긴다. 사회적인 '배려'를 기대하긴 어렵다. 지하철에 '분홍색 임산부 리본'을 달고 타도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남성들은 일어날 줄 모른다(나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정말 반성한다). 술에 취한 아저씨들을 피해 배를 감싸고 빈 곳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야근하고 밤늦게 택시를 탔는데 하필 담배 냄새에 찌든 택시를 탔다. 아기를 위하겠다며 탄 택시가 하필 그랬다(물론 회사에서 택시비가 나오긴 했다). 내릴 수 없어 코를 막고 오고 있다는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창문이라도 좀 열고 와 ㅠㅠ"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녹초가 된 몸으로 꼬리뼈 좀 주물러달라는 말에 그것밖에 해줄 게 없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생각해보면 나를 가진 엄마는 10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무척 숙연해진다. 앞으로 반년이나 남은 임신과정과 출산은 또 어떻게 견뎌낼까. 아득하지만,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아내와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선다. 통증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며.

한 남편의 출산일기

  • (1) 임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