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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 Headshot

한 남편의 출산일기 (1) 임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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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도 병원에 많이 갔다. 올해 1월에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 때문이었다. 응급실, 중환자실, 6인실, 2인실, 격리실에서 대학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까지, 먹고 자고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다. 일찍이 경험해본 바 없는 병원 생활은 신혼 생활마저 송두리째 바꿨다. 파킨슨병까지 앓고 있는 아버지를 홀로 둘 수 없어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혼 전셋집을 청산해야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몇 차례의 순간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실존적인 고민도 했다. 신혼 초반 부부가 겪었던 다툼은 날이 갈수록 부끄러워졌다. 아내에 대한 감정은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결혼을 하면서 ‘나 혼자 살 때’와는 판이해졌다. 하나가 둘이 됐고 양가를 신경 써야 했다. 출산은 결혼 2년 차로 계획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간호와 함께 회사 일도 봐야 하는 처지에서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뤄지다 숨을 좀 돌리고 배란일을 확인했다. 임신 전후로 복용하는 엽산은 아내뿐만 아니라 나도 같이 복용하며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아침에 방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좋아할 만한 일이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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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적으로 당연히 ‘임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월 29일, 30일, 8월 1일, 8월 2일까지. 매일 테스트지에 임신 여부를 확인하며 점점 진해지는 두 줄(임신일 경우 두 줄)을 보며 임신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 그 과정에서 한번은 둘 다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었다. 생리를 연상케 하는 빨간 핏덩어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색깔도 두 줄이 맞나 싶기도 했다.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착상혈이었다. 아기집이 자궁 속에 만들어지면서 생길 때 나는 출혈이다. 그렇게 둘 다 초보였다.

산부인과 예약을 알아봤다. 초진은 예약이 안 된다고 했다. 가서 기다려야 했다. 집 근처 유명한 산부인과를 갔다. 가보니 이미 주차장은 만차, 진료실로 올라가 보니 대기 인원만 줄잡아 40~50명은 됐다. 아서라.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집 근처 종합병원 산부인과로 향했다. 대기인원 0명. 접수하고 곧장 임신 관련 질문을 받고 대답한 뒤 아내는 초음파실로 향했다.

“보호자 들어오세요.”

이게 뭐라고 떨리는지. 문을 열고 자리에 앉자 고막을 진동하는 소리가 귓가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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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임신 5주입니다.”

초음파에 나타난 아기의 형상은 사실, 까만 점이었다. 그게 아기집이라고 했다. 태아의 심장 소리는 2주 뒤에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게 신기했다. 실감 나지 않았다.

임신테스트지로 진단한 지 1주일밖에 안 돼서 임신 1주일인 줄 알았던 바보는 임신과 출산에 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아내가 먹는 음식은 날 것에서 익힌 음식으로, 즐겨 먹던 커피도 모조리 끊었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기 어려우므로 감기에 걸리지 않게 집 온도도 신경 써야 했다. 허리가 아플 때는 온열 찜질팩을 대줬고, 매일 컨디션을 체크했다.

사실, 아내는 출산을 두려워했다. 아내에게 글과 동영상으로 접한 그 세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아기를 진심으로 기다렸고 임신이 찾아왔다. 아픈 노부모에게 빨리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임신 소식만으로 두 집안의 공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태명도 짓지 않은 아기 이야기로 웃음꽃이 만발했다. 장인어른은 "내가 손주를 봐주겠다"며 호탕하게 웃었고, 장모님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처가를 찾을 때마다 각종 음식으로 부부의 두 손을 무겁게 했다.

어머니의 투병 소식에 하루가 멀다 하고 짜증이 폭발했던 아버지의 얼굴엔 1년에 한 번도 보기 어려운 미소가 만개했다. 축하하는 점심 식사자리에 절로 눈물이 나버린 나는 "영감, 그렇게 좋소?"라고 물었다. 아내가 "할아버지 되신 거 축하드려요!"라고 말을 보태자, 파킨슨 투병으로 몸이 말라가는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쥔 채 그저 좋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먹던 음식에 목이 멘 나는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임신 5~6주의 태아는 5mm밖에 되지 않는 까만점만 한 존재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런 행복이 찾아왔다. 그래서 무척이나 소중하다. 모두가 임신과 출산을 꺼리는 상황에서 겁 없는 도전을 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부모의 병간호, 집안일, 회사 일까지 아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무척이나 커졌다. 절반 이상의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 스스로 하는 다짐과도 같다. 좀 더 움직이고, 부지런한 아빠가 되자고 말이다.

우울한 그늘이 드리운 집에 생명의 기운이 생겼다. 병실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찾았다. 나는 초음파 사진을 가리키고 설명했다. 희미하게 의식이 남아있는 어머니의 눈동자는 또렷하게 사진으로 향했다.

“엄마, 축하해.” 내년 4월, 출산까지 살아있어야만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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