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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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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 EU
Francois Lenoir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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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2016년 6월 24일(우리시간), 영국시민들은 '유럽연합(EU)'으로부터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런던시를 비롯해,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유권자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이와 같은 결정을 하였다. 주민투표 시기가 정해진 뒤로 찬반양론은 두어 차례 엎치락뒤치락하였고 마지막에는 팽팽하게 맞섰다. 이를 예의주시한 세계의 주요 언론매체와 경제전문가들은, 영국시민들이 결국은 유럽연합에 잔류하는 결정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숫자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탈퇴' 지지자들이 과반수 이상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예기치 못한 결과 앞에 다들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전 세계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곤두박질했고,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했다. 과장일지 모르겠으나, 전 유럽은 물론 세계시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여론도 시시각각으로 '브렉시트'를 진단하기에 바쁘다. 나 역시 '브렉시트'에 관심이 없을 수 없어, 오래 전부터 서구 주요매체의 관련기사를 분석해왔다. 특히 영국과 미국 및 독일의 언론보도에 촉각을 세웠다. 그 동안 독서 및 시청경험을 토대로 이번 사태에 관한 내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 싶다.(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각주는 생략한다.)


2. 왜, '브렉시트'인가?

이번의 주민투표는 영국수상 캐머런의 정치적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주민투표를 무기로 삼아 유럽연합을 압박함으로써 영국의 국익을 보장받으려 했다. 또한, 영국사회에서 난제로 되어 있는 유럽연합에 관한 국론분열을 극복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반석 위에 올리고자 하였다. 개표결과 그의 정치적 야심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주민투표라는 발상 자체는 제법 그럴싸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 말이지 오래 전부터 영국에서는 유럽연합에 관한 비판적인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연합이 영국의 주권을 갈수록 심하게 제약한다는 불만이었다. 실제로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의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는 엘리트들은 선거에 의해 직접 선발되지 않은 전문 관료들이다. 그들 엘리트들은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을 상대로 중앙집권적 경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유럽연합 내에서 최강의 지위를 굳힌 독일,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인들이 다수 포함된 다국적 기업가와 은행가들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점이다. 브뤼셀은 영국의회 또는 영국시민들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로 인해, 영국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브뤼셀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불만은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심지어는 독일 내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브뤼셀의 엘리트들을 증오하고 있다.

요컨대, 유럽연합을 지배하는 숨은 힘은 거대자본이다. 그들은 자기네의 경제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엘리트 집단을 브뤼셀의 각종 위원회와 유럽의회 등에 골고루 배치해 놓은 것이다. 때문에,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국의 주권 회복'과 '민주정치의 회복'을 부르짖었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유럽에서는 반복되고 있다. 이삼년 전, 당시 그리스의 청년 정치가 치프라스가 '그렉시트(GREXIT)'의 기치를 들고 나왔을 때도, 그리스의 주권회복과 회원국 상호 간의 민주적 질서 건설이 구호로 등장했다. 그러나 빚더미에 올라앉은, 힘없는 그리스가 '그렉시트'를 단행할 수는 없었다. 한때 의기양양했던 치프라스는 브뤼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채 백기 투항했고, 덕분에 수상의 자리를 아직도 꿰차고 있다. 치프라스를 굴복시킨 브뤼셀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을 더욱 철저히 지배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브렉시트'를 불러왔다. 요컨대, '그렉시트'가 불발했기 때문에 '브렉시트'의 시대가 오고 말았다는 평가도 허무맹랑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3. 유럽연합의 장밋빛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물론 이것 말고도 '브렉시트'가 초래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당연히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 유럽연합이 '유로(EURO)'라는 단일화폐를 채택한 21세기 벽두, 모든 회원국들은 자국의 고도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독일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성장은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거의 모든 회원국들은 장기적인 불황에 빠졌고, 실업률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런 와중에 유럽연합은 양적으로 팽창을 거듭하여 해마다 회원국이 늘어났다. 회국원 상호 간에 무비자입국과 체류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가난한 회원국의 시민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몇몇 회원국가로 대거 몰려들었다. 이로써 해당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영국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동구권 출신의 집단이주였다. 영국의 기업가들은 동구권에서 몰려온 값싼 노동력을 내심 환영하지만, 그로 인해 영국시민들은 일할 기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복지 혜택마저 줄어들었다. 영국시민들의 불만이 더욱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근년에는 시리아난민을 비롯해, 중동과 북아프리카로부터 수많은 난민이 몰려들었다. 독일은 작년 한 해만 해도 1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하였다. 난민 문제는 미국중심의 세계지배체제가 누적된 모순을 드러낸 결과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전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유럽 각국의 고민은 더욱 더 깊어졌다. 최근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터키정부를 적절히 이용하여 난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터키와의 관계를 더 이상 확대, 발전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독일의 지원에 힘입어, 멀지 않은 장래에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몹시 긴장하고 있다.

난민 문제의 수습을 둘러싸고 각국의 이해관계는 더욱 첨예하게 대립될 전망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극우 '포퓰리즘'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극우의 정치적 팽창세가 목격된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유럽 각국의 극우 정치가들은 유럽연합을 해체시키려든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을 호되게 비판하는 한편 자국민의 보호를 내세워, 표심을 도둑질하고 있다. 이번 영국의 주민투표 때도 극우파의 선동적 구호가 난무하였다. 심지어는 젊은 여성 하원의원 한 사람이 극우파의 총칼에 희생되기도 하였다. 야만적이고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영국시민들이 극우의 주장에서 멀어지는가 싶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많은 영국시민들은 극우파의 주장에 현혹되어,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 지지하였다.


4. 지금 이 순간, 유럽의 좌파는 무능하다

주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일순간 브뤼셀은 크게 당황하였다. 유럽연합의 최대 주주에 해당하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무거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두려웠을 것이다.

"'브렉시트'는 여러 회원국가에서 또 다른 '엑시트'로 연결되고 말지도 알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되면 유럽연합의 공든 탑은 무너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브뤼셀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은행가들과 다국적 기업가들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유럽에 믿을 만한 진보적 정치가들, 즉 좌파가 있었다면, 그들의 입에서 이런 주장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기회로 삼아,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전진시켜야 한다. 그러기에는 지금이야말로 수십 년 만에 맞이하는 절호의 찬스가 아닐 것인가. 준비된 좌파라면 말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브뤼셀을 수술하고, 보란 듯이 유럽사회를 뜯어고쳐야 할 때다.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른바 좌파는 침묵에 빠져 있다.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는 여보란 듯 내놓을, 구체적인 플랜이 없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기라도 한 듯, 브뤼셀과 유럽연합의 기득권층은 이미 안정을 되찾은 분위기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기정사실이 된 지 불과 사나흘이 지난 지금, 유럽의 중도우파 정치가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앞길에는 아직도 통과해야 할 지뢰밭이 조금 남아 있다. 어떻게 하면 이번 사태의 부작용을 줄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세상이 당장 뒤집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같은 것은 조기에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좌파의 거센 도전이 없는데, 과연 무엇이 두려우랴? 메르켈을 비롯한 독일의 집권세력, 융커로 대표되는 브뤼셀 세력이 일치단결하여 영국을 압박하며, "나갈 테면 하루빨리 떠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남몰래 믿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5. '브렉시트'는 없다

설사 영국이 '브렉시트'의 절차를 밟는다 해도, 그것이 곧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본 건에 관하여 '탈퇴'를 선동한 주요 영국의 우파 정치가들의 발언을 곰곰이 따져본 결과, 나는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유럽연합과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원한다. 유럽연합과 영국이 무관세협정을 맺기를 바라고, 또 영국 내에서 유럽연합의 주요국가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주하는 것도 용인하고, 그 대가로 영국인들이 그런 대접을 받게 되기를 소망한다. 심지어 영국 내에서 파운드화와 함께 '유로화'를 사용하는 것도 종전과 같기를 바란다. 그들은 사실상 유럽연합의 일부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단지 브뤼셀의 지나친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다. 공식적으로는 회원국가가 아니되, 실질적으로는 회원국가로서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브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브렉시트'를 위한 주민투표 자체가 법적 강제력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의 탈퇴를 규정한 유럽연합의 법(제50조)에는 '상대국가가 헌법에 적합한 절차에 따라 탈퇴를 요구한다.'고 하였다. 알다시피 영국에는 성문헌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영국왕의 인정을 받는 의회의 결정이 곧 헌법의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영국의회가 원하기만 하면 적절한 시기에 금번의 주민투표 자체를 얼마든지 무효화할 수 있다. 참고로, 현재 영국의 의원들 가운데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이다. 이래저래 과장된 언론보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섣불리 짐작하는 단절적 의미의 '브렉시트'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과거 1970년대에도 영국은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유럽경제공동체'(EEC)를 탈퇴한다며 한 차례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떠나지 못했으며, '유럽연합'의 주요 회원국으로서 활약했다.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실용적이며, 극적인 변화를 최대한 회피하는 것으로 정평이 있는 나라다. 이런 영국에게 '브렉시트'는 불가능한 일이다. 19세기 말부터 런던시티의 장관(壯觀)인 마천루가 줄곧 세계금융의 중심이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그들이 문자 그대로의 '브렉시트'를 고집한다면, 이들 마천루가 허물어지고 말 터인데, 과연 영국의 자본가들이 그처럼 무익하고 무모한 도박을 벌이겠는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