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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 Headshot

이제는 MBC를 욕하는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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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해고된 지 2년쯤 지난 2014년 여름. 한 출판사의 권유로 책을 쓰게 된 나는 추천사를 부탁드리기 위해 손석희 선배를 찾아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JTBC의 세월호 보도를 칭찬하자 손 선배는 아직 멀었다면서, 젊은 기자들이 자질도 괜찮고 열심히 뛰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마세요. 손석희라는 리더를 만났으니 금방 최고의 기자들이 될 겁니다. MBC 보세요. 김재철 사장 3년 만에 그 경험 많은 기자들이 '엠빙신' 소리 듣고 있잖아요."

말은 그리했어도 내 예언이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요즘 뉴스를 보려는 사람들은 저녁 8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채널을 JTBC로 돌린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본방사수'하는 열혈 시청자들이 꽤 많다. '뉴스룸'의 시청률은 이제 같은 시간 방송되는 SBS, MBC 메인뉴스의 두 배에 육박하고 9시에 방송되는 KBS 뉴스를 따라잡을 기세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한 시청과 다시보기까지 더한 실질 시청률을 따져 본다면 이미 KBS를 넘어서지 않았을까. '뉴스룸'은 단 2년 만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방송뉴스가 됐다.

반면 MBC '뉴스데스크'가 처한 상황은 한마디로 처참하다. 시청률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수준이고 언론학자들이 평가한 신뢰도, 공정성 순위는 리스트에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2년 전만 해도 '엠빙신'이라는 욕이 유행이었는데 이제는 욕하는 사람들이 그리울 지경이다. 뉴스를 봐야 욕을 하든 비난을 하든 할 거 아닌가. 어쩌다 인터넷에서 '뉴스데스크' 얘기가 나오면 'MBC가 아직도 뉴스 하나요?'라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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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해직기자 박성제씨가 지난 16일 "청와대 방송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피켓팅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듣보잡' 뉴스가 된 MBC

최근 후배 기자들이 회사 게시판에 반성과 혁신을 요구하는 글을 많이 올리고 있다고 한다. 촛불집회에서 카메라와 마이크에 붙은 MBC 로고를 떼어버리고 방송을 해야 했다면서 울분을 터뜨리는 후배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얘기는 따로 있었다. 지난달 오패산 터널 총격사건 당시 보도국에 제보 전화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근을 하고 있으면 각종 사건·사고를 제보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귀찮을 정도로 울리곤 했다. 그런데 서울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급기야 경찰관이 사망했는데도 제보를 하는 시민이 없었다니. MBC 뉴스는 이제 말 그대로 '듣보잡' 뉴스가 된 것일까.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주 이사회에서 야당 추천 이사들이 뉴스가 이 꼴이 된 책임을 따지기 위해 사장과 보도본부장을 부르자고 했다. 그랬더니 여당 추천 김광동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MBC가 흥분 안 하고 왜곡하지 않고 공영방송의 틀에 맞게 뉴스 잘하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이사장은 뭐라고 발언했을까.

"촛불집회 때 깃발 보니까 민노총, 전교조가 다 동원됐고 시민들은 몇 명 없더라."

나는 이런 발언들이 정신 나간 헛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 틀림없다. 이분들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무슨 소리냐고? 'MBC 뉴스를 아무도 안 보게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지금 JTBC 뉴스를 이끌고 있는 사장 손석희,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자백'의 감독 최승호,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기자 이상호. 이들이 다 어디 출신인가? 이런 기라성 같은 인물들 말고도 MBC에는 권력 비리 파헤치는 걸 천직으로 아는 베테랑 기자, PD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청와대와 국회, 검찰이 가장 두려워했던 언론사, 대기업 홍보담당자들이 가장 로비하기 힘들어했던 언론사, 촛불집회에서 언제나 박수와 격려를 받았던 언론사,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했던 언론사가 과연 어디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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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정권 감시했던 셰퍼드가 애완견이 되기까지

MBC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눈엣가시였던 MBC를 적당히 손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망가뜨리기로 작정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방문진에 공안검사, 뉴라이트, 어용학자들을 줄줄이 배치한다. 그리고 조직을 망가뜨리는 데 가장 적합한 리더, 무능력한 동시에 잔인한 인물을 고르고 골라서 낙하산 사장으로 투하한다. 이렇게 선발된 김재철, 안광한씨가 한 일을 보라. 먼저 전·현직 노조 집행부, 기자회장 같은 사내 영향력이 있는 언론인 십여 명을 좌파로 몰아서 해고해 버린다. 평소 못마땅했던 기자, PD, 아나운서 수십 명은 정직을 때려 몇 달씩 회사에 못 나오게 했다.

권재홍 부사장, 백종문 본부장, 이진숙 본부장, 김장겸 본부장 같은 임원들이 앞장서 나섰다. 뉴스데스크, PD수첩에서 민감한 아이템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쓰잘데기 없는' 기획과 시청자들이 몰라도 되는 팩트들이 많아졌다. 조금이라도 불만을 내비치거나 공정보도 따위를 요구하는 놈들은 인사발령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빼앗고 스케이트장 관리, 광고협찬 따오기 등의 일을 시키면 된다. 그들의 빈자리는 무슨 시험을 어떻게 봐서 채용됐는지도 모르는, 고분고분한 경력사원들로 채워졌다.

퍼펙트한 작전이었다. 몇 년 만에 MBC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듣보잡으로 전락했다. 가장 무섭게 정권을 감시했던 셰퍼드는 이빨이 다 뽑히고 혓바닥만 남은 애완견이 됐다. 감시 기능을 상실한 언론은 더는 언론이 아니다. 당연히 시청자들도 MBC를 '언론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MBC는 '무한도전', '복면가왕'과 드라마만 챙겨보면 되는 '오락 채널'로 변신했다. 브라보! 그들의 목표가 드디어 달성된 것이다.

MBC가 예전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언론사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나운 감시견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다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죽을 각오로 암덩어리를 도려내고 고름을 짜내야 한다.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MBC 언론인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청와대가 이사회를 장악해서 낙하산 사장을 보내고 그 사장이 인사권을 휘두르는 시스템이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하야하더라도 이 시스템이 건재하는 한, MBC의 부활은 요원하다. 그래도 되살려야 한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조롱거리로 전락한 MBC의 언론인들을 구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권력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패한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송곳니를 모조리 뽑힌 감시견은 지금 피눈물을 흘리며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MBC는 오로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국민의 명령만을 따라야 하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