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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구명조끼 발언에 대한 언어철학적 분석과 세월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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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보고문서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30년간 봉인해 버리면서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던 중 임종석 비서실장이 참사 당일의 청와대 상황보고일지가 사후 조작된 정황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가 새삼 국민적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세월호 7시간, 좀 더 정확히는 7시간 30분 동안 박근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탄핵심판 당시 헌재재판관들이 말했듯이 박근혜 개인의 행적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고, 그래서 본인이 자발적으로 세월호 7시간에 대하여 솔직히 소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소명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에 대해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가만히 살펴 보면 단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가 세월호 침몰 당일 최초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의 언행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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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게 구명 쪼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박근혜가 세월호 침몰 당일 중대본을 방문하여 내놓은 첫 질문이다. 소위 '구명조끼 질문'으로 알려진 이 질문은 학생들이 침몰하는 선체에 갇혀 있던 긴박한 상황에서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TV만 보았어도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구명조끼 질문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명조끼 질문은 이후 국민들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된 최초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세월호 조난자들의 구조가 분초를 다투는 그 위중한 순간에 박근혜가 왜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했는가에 대해 몇몇 '학설'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는 소위 '이노센트 와이(innocent why) 학설'을 내놓았는데,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순수한 궁금증 학설 정도 되겠다. 박근혜가 학생들을 발견하기 그렇게 힘드냐고 물은 것은 어린 아이가 궁금증에 못 이겨 부모님께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논리다. 한편, 탄핵심판 당시의 박근혜측 대리인단은 조금 다른 학설을 내놓는데, 그들은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은 '뱃속에 갇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을 것이니 구조하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학설은 탄핵심판 당시 국회측 대리인단이 내놓았다. 국회측 대리인단은 박근혜가 중대본에 오기 전까지 학생들이 세월호 선체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바로 그런 이유로 구명조끼 질문과 같은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안전행정부(지금의 행정자치부) 제2차관이 구명조끼 질문에 대해 대답하면서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박근혜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가 어떤 생각으로 구명조끼 질문을 던졌냐는 것이다. 아마 이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은 박근혜 본인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라는 한국어 사용자가 한국어 의문문을 사용하여 구명조끼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언어의 사용에 대한 학문적 논의에 기반하여 박근혜가 무슨 생각으로 그 질문을 던졌는지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추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궁금할 때 질문을 한다. 내가 길가는 사람에게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하철 역의 위치가 궁금한 것이다. 이 경우 내가 필요한 것은 지하철 역의 위치에 관한 정보이다. 의문문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와 언쟁하면서 '당신 귀먹었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청력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에게 '창문 좀 열어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지 그에게 창문을 열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발화수반력(illocutionary force)이라고 부르는데, 영국의 철학자 오스틴(J. L. Austin)이 그의 화행이론(speech act theory)에서 도입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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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우리가 의문문을 말할 때 그 말은 다양한 발화수반력을 동반할 수 있다. 대개 새로운 정보가 필요해 의문문을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럼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의 발화수반력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다 그렇게 구명 쪼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가끔 우리는 의문문을 상대방의 동의나 확인을 구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지난 대선 최고의 명장면을 떠올려보자. TV토론에 나온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런데 이 질문에서 재미있는 점은 안철수 후보가 그 질문을 통해 문재인 후보에게 원했던 것은 자신이 MB 아바타인지 여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MB 아바타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안철수 후보는 그 질문을 통해 문재인 후보의 동의를 원했던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사례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시험을 망친 학생들에게 '시험이 좀 어려웠지?'라고 말한다면, 나는 학생들에게 시험에 대한 어떤 새로운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이 학생들에게 어려웠다는 것을 이미 아는 내가 그 질문을 통해 원하는 것은 학생들의 동의 혹은 확인인 것이다.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한 상황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새로운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질문자는 학생들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 질문은 청자의 동의 혹은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은 청자로부터 정보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질문이 아니다.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 있어요?'와 같은 보통의 질문은 어떤 정보에 대한 질문자의 궁금증에서 비롯하는데 반해 구명조끼 질문은 그렇지 않다. 이는 김장수의 순수한 궁금증 학설이 틀렸다는 것을 뜻한다. 순수한 궁금증에서 질문을 하는 이는 말 그대로 '궁금증' 때문에, 즉 정보의 필요 때문에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구명조끼 질문으로 원했던 것은 동의나 확인이지 새로운 정보가 아니었다.

탄핵심판 박근혜측 대리인단은 뱃속에 갇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을 것이니 구조하라는 명령의 취지로 박근혜가 구명조끼 질문을 했다는 학설을 폈다. 하지만 이 학설 역시 설득력이 없는 것이 그 학설은 박근혜가 학생들이 뱃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학생들을 어떻게 발견할지는 학생들의 구조에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가 성립한다고 가정할 때, 분초를 다투는 그 위중한 상황에서 박근혜가 "그렇게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도저히 질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어철학자들은 어떤 발화의 발화수반력이 일부분 청자의 해석(uptake)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데,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에 대한 안행부 제 2차관의 답변을 보면 그가 박근혜의 질문을 명령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가 박근혜의 질문을 명령으로 해석했다면 "예 알겠습니다",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그건 좀 어렵습니다"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안행부 제 2차관의 답변은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였다. 대화의 청자인 그가 박근혜의 질문을 명령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가 안행부 제 2차관의 답변을 듣고 '네. . . '라고 응답한 것을 보면 박근혜 역시 그 해석에 큰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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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박근혜의 질문에 대한 안행부 제 2차관의 답변은 '갇혀 있기 때문에 . . . '였다. 박근혜가 원했던 답변, 즉 동의나 확인의 답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안행부 제 2차관은 동의나 확인을 해 줄 수가 없었을까? 그것은 박근혜의 질문이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은 조난된 학생들이 구조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는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장시간의 부재 이후 마침내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놓은 첫 질문이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중대본에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사이에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 가장 긴요하다고 판단되는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기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은 대화맥락상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그렇게 학생들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서 가장 절박한 문제들 중 하나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제가 틀렸던 것이다.

박근혜가 중대본을 방문할 당시 TV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세월호 선체 내부였다. 때문에 일단 구조대가 선체 내부로 진입만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급한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구출해 낼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구출해 내기까지 학생들을 어떻게 생존시킬 것인가였다. 이처럼 박근혜의 구명조끼 질문은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었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박근혜는 구명조끼 질문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던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는 학생들의 구조함에 있어서 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왜 박근혜는 학생들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자신의 생각에 대하여 동의나 확인을 구했을까? 그것은 바로 박근혜가 학생들이 선체에 갇혀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지점에서 박근혜가 학생들이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표류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추측해 본다. 어쨌든, 구명조끼 질문을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엄밀히 분석할 때, 중대본 방문시 박근혜가 조난당한 학생들이 선체에 갇혔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탄핵심판 국회측 대리인단의 학설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장시간 동안 대통령이 제대로 된 상황보고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TV 뉴스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구조활동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단순한 억측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에 <교수신문>에 발표된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