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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공작은 여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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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약 1백만표, 전체 투표참여자의 3.6% 차이로 이겼다. 국정원 및 국방부 사이버 사령부의 댓글 공작은 거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연일 댓글 공작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요즘 많이 이들이 묻는 질문이다. 아쉽게도 댓글 공작이 국정원에 의해 은밀히 진행되었고 이미 5년이 지난 일이라 그것의 영향력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데이터를 지금에 와서 수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정권 교체시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전정부적으로 댓글 공작을 수행한 것으로 보아 이명박 정부의 담당자들이 댓글 공작의 영향력에 대하여 꽤 큰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영향력에 대한 아무런 검증이나 확인 없이 위험천만한 댓글 공작을 실행에 옮겼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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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댓글 공작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학술적 연구 성과를 통해 그 위력을 좀 더 자세하게 가늠해 보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국정원이 고용한 수천 명의 댓글 알바들과 국군 사이버 사령부의 군인들이 보조를 맞추어 조직적으로 이명박·박근혜를 옹호하는 게시글을 올리고 그 글에 "좋아요" 추천을 할 때 그것이 일반 시민들의 여론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타인의 말(댓글)이나 행동(추천)에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학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행과 같은 무리 행동(herd behavior)이 대표적 사례이다. 일부 사람들이 특정 스타일의 옷을 입고 그것이 멋있는 것으로 여겨지면 그 스타일은 삽시간에 사회 전체로 퍼진다. 이런 무리 행동을 설명할 때 많이 언급되는 것이 "대세를 따르는 심리"이다. 학계에선 "군중심리" 혹은 "밴드웨건(bandwagon) 효과"와 같은 개념이 사용되기도 하고, 정치권에서는 "대세론"이라는 표현도 쓴다.

이 설명에서 군중 속의 개인은 합리적인 자율성을 결여한, 레밍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연전에 청소년들 사이에 노스페이스 점퍼가 대유행일 때, 엄마에게 노스페이스 점퍼를 사달라고 조르며 "친구들이 다 노스페이스 입으니까 나도 그것 입어야 해"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실제로 구스타프 르 봉(Gustav Le Bon) 류의 군중심리학 이론은 군중 속의 개인들이 무명성에 의지하여 개인적인 개별성이나 도덕적 책임감을 상실한 채 전체 군중의 흐름을 아무런 숙고나 반성 없이 무차별적으로 추종한다고 본다.

이런 군중심리학적 관점에서 댓글 공작의 위력은 그것이 불러오는 군중심리의 강도에 비례한다. 댓글 알바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댓글을 달고 그 댓글에 "좋아요"를 선택할 때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그 흐름을 거역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군중심리를, 혹은 그들 역시 박근혜를 지지하며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픈 군중심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댓글 공작의 위력은 그 군중심리의 강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리 행동을 연구하는 대다수의 학자들은 군중심리학적인 접근이 무리 행동이 갖는 부정적, 비합리적, 맹목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것의 합리적, 이성적 측면을 간과했다고 본다. 가령, 진화생물학자들은 때때로 개체 A가 개체 B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B가 힘들게 얻은 지식을 A가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서 진화론적으로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타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사회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이나 정보경제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군중심리학이 간과한 무리 행동의 합리성을 한층 더 명료하고 치밀하게 논증하는데, 그들에 따르면 개인들이 타인의 말이나 행동으로부터 정보를 합리적으로 습득하고 처리하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의 결과로 무리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당신이 휴가 계획을 짜며 제주도 서귀포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먹을지 궁리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한 결과 "서귀포 횟집"이라는 식당이 싱싱한 회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휴가를 위해 제주도에 도착한 당신, 저녁 식사를 위해 서귀포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바깥에서 보니 의외로 서귀포 식당은 파리만 날리고 손님이 전혀 없다. 한편 바로 옆 "구라파 횟집"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때 당신은 서귀포 횟집과 구라파 횟집 중 어느 식당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열에 아홉은 구라파 횟집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이 비합리적 선택인가? 아니다. 당신은 앞선 손님들의 선택으로부터 두 식당 중 구라파 식당이 더 좋은 식당이라는 정보를 합리적으로 이끌어냈고, 그런 점에서 당신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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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당신이 그러한 합리적 선택을 하면서 애초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무시하고 서귀포 횟집은 텅텅 비어 있고 구라파 횟집은 손님들로 북새통이라는 관찰 사실로부터 추리된 정보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즉, 당신 자신이 애초에 가진 정보보다 타인들의 행동에서 추리된 정보를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사적 정보보다 타인들의 말이나 행위로부터 유추된 정보를 우선할 때 정보 폭포(information cascade)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폭포인 이유는 당신 이후에 서귀포 식당을 찾는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정확히 동일한 추론을 통하여 동일한 식당, 즉 구라파 식당을 선택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각 개인의 선택은 그러한 선택의 방향성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단 정보폭포현상이 발생하면 상당한 지속성을 갖는 무리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철학적·경제학적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각 개인들 입장에선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경우에도 무리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무리 행동의 사례들 중에는 기존의 군중심리학이 말하듯 군중에 휩쓸린 개인들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책을 구매하러 서점에 간 철수가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는 것을 두고 그것이 군중심리나 밴드웨건 효과로 인한 비합리적 행위라고 폄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철수는 앞서 책을 구매한 이들의 선택을 참고하고, 그들의 선택을 반영한 베스트셀러 목록으로부터 어느 책이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합리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보경제학에 무지한 어느 한겨레신문 기자가 쓴 다음 글을 참고하라. "베스트셀러 조작의 공범은 '따라쟁이' 독자들")

마찬가지로 영희가 주말에 볼 영화를 선택하면서 박스오피스를 참고하는 것 역시 자신보다 먼저 영화를 본 타인들의 선택으로부터 어느 영화가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합리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철수나 영희가 무리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결코 맹목적이거나 비합리적 충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철수나 영희가 무리 행동에 참여하는 현상에 대하여 사회인식론이나 정보경제학이 기존의 군중심리학보다 한층 정확한 설명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신문의 사회면에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출판업자, 음원 사재기로 음원 순위를 조작하는 음반업자에 관한 뉴스가 종종 나온다. 책 X를 사재는 출판업자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조작하고, 그것을 통하여 책을 구매하려는 이들에게 조작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일단 그런 조작에 의해 정보폭포현상이 발생하면 상당한 지속성을 갖는 형태로 X를 구매하는 무리 행동이 나타난다. 이런 지속성이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출판업자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댓글 알바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리고 그 댓글에 "좋아요"를 선택할 때 군중심리학적 설명에선 댓글 공작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댓글 공작에 의해 야기된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을 강한 합리적 의지를 가진 개인들에겐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경제학적 설명에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댓글 공작으로 가장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표적이 다름 아니라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는 많은 이들은 기사의 본문을 수험생이 수험서 보듯이 열심히 읽지 않는다. 기사의 본문을 간단히 훑어 보고 곧장 뉴스 하단의 댓글란으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스에 대한 정보를 직접 획득하고 평가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기고 뉴스에 대한 타인들의 댓글 반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정보를 획득하고 평가하는 뉴스소비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이는 강력한 정보폭포현상이 발생할 개연성을 높인다. 그런 개연성이 높은 만큼 이명박 정부의 댓글 공작이 뉴스에 대한 여론을 좌지우지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베스트셀러 조작이나 음원 순위 조작의 영향력을 통하여 그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 댓글 공작에 의한 여론 조작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일단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게 되면 하루에 5권 나가던 책이 500권 이상 나가게 되고,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걸 아는 사람들은 사재기 유혹에 빠진다"고 출판관계자가 말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베스트셀러나 음원 순위 조작이 관련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정보폭포현상에 따른 무리 행동이 위력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댓글 공작이 베스트셀러나 음원 순위 조작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갖는 만큼 그 역시 여론조작에 있어 위력적이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얼마 전 댓글 공작에 대한 검찰 조사를 비판하며 그것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5년이 지난 지금 그것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다. 홍준표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것을 그리 쉽게 단정할 문제는 아닐 듯싶다. 앞서 말했듯이 2012년 대선은 불과 3.6% 차이로 승부가 판가름났다. 적어도 학술적 관점에서 볼 때 댓글 공작으로 인해 그 결과가 뒤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내용의 SNS 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일전의 법원 판결은 환영할 만하다. (댓글 공작의 부도덕성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기사를 참고하라: "국정원 댓글공작, 그럴 수도 있다고요?" /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 '내란죄'로 단죄해야 한다 )

* 이 글은 <교수신문>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