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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 박형준 교수님, 댓글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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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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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과정을 추정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북한과 국내 종북 세력들이 특히 광우병 사태라든지 천안함사건 제주강정기지 이런 데에 댓글을 활용해서 대남 심리전을 강화하고 그러니까 대응 심리전을 강화해야 된다, 이런 논리는 국정원 내에서도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대응을 하는 댓글 부대를 많이 늘렸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책 사업을 비호하다 보면 댓글 공간이 싸움의 공간이니까 그게 이제 경계가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어서 이쪽에는 소위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한 선상에 서게 된 거죠. 이런 걸 명확히 관리하고 엄격하게 통제해야 될 책임이 당시 국정원 간부뿐만 아니라 원세훈 원장한테도 있었던 건데."

며칠 전 방영된 썰전에서 이명박 정부의 댓글 공작에 대한 꼭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박형준 교수가 내놓은 말이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사전에 준비를 해 온 자료를 읽으며 말한 것으로 보아 박 교수가 엉겁결에 한 말은 아닌 듯싶다. 먼저 박 교수는 광우병 사태, 천암한 사건 등과 관련한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정원에서 댓글 공작의 아이디어가 최초로 탄생했는데, 그런 "논리는 국정원 내에서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그런 댓글 공작이 이후 최초의 순수한 취지에서 벗어나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국책사업을 비호하는 정치 개입으로 흘렀고, 그 부분에 국정원 댓글 공작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박 교수 말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댓글 공작 그 자체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2)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한 대응책으로 댓글 공작은 정당한 국정원의 활동일 수 있다. (3) 국정원의 잘못은 대북 심리 대응과 정치 개입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최초의 취지와 달리 댓글 공작을 정치 개입에 활용한 데 있다. (4) 그러나 대북 심리 대응과 정치 개입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만큼 국정원 나름의 고충도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 (1)과 (2)는 억지 궤변이고, (3)과 (4)는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다.

댓글 공작이 무엇인가? 수천 명의 댓글 알바들이 알바비를 받고 국정원이 제공한 지침에 따라 이명박·박근혜를 옹호하는 게시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또 그런 게시글에 "좋아요" 추천을 누르는 것이다. 이런 댓글 공작이 잘못된 것은 그것이 온라인 토론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기만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이다.

인터넷이 여론 형성을 위한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다음 아고라의 게시글이나 뉴스 댓글을 쓰는 이들이 자신의 소신이나 신념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한다는 가정이 필수적이다. 그런 가정 없이는 토론도 숙의도 공론도 다 공염불이다. 박 교수의 말대로 인터넷이 여론의 전쟁터라 하더라도 게시글을 작성하는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소신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 전쟁의 기본 규칙이다. 그 기본 규칙이 파괴될 때 인터넷은 더 이상 여론의 전쟁터가 아니다. 단지 여론 조작의 전쟁터일 뿐이다.

그런데 댓글 공작은 바로 이 규칙을 파괴했다. 알바비와 함께 이명박·박근혜를 옹호하라는 지령을 받는 댓글 알바는 표현의 자유를 갖는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 알바가 게시글을 작성하는 목적은 애초 타인과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다. 그들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떠도는 좀비 같은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갖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게시글을 통하여 여론을 형성해야 할 공간에 표현의 자유가 없는 댓글 알바들이 좀비 게시글을 생산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좀비 게시글을 마치 자유로운 시민들이 자신의 소신이나 신념을 표현하는 게시물인 것인 양 위장했다는 데에 있다. 댓글 알바들이 국정원의 지령에 따라 아무런 생각 없이 좀비처럼 게시글을 작성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나 신념을 표현하는 것처럼 인터넷 토론 공동체를 집단적으로 기만했다는 말이다. 이런 인터넷 토론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기만, 이것이 댓글 공작의 핵심이고, 바로 이것 때문에 댓글 공작은 여론조작에 해당한다. (관련 글 : '국정원 댓글 공작'이 특별히 추악한 여론조작인 이유)

댓글 공작에 의한 여론 조작은 출판업자들에 의한 베스트셀러 목록 조작이나 음반업자에 의한 음원 순위 조작과 여러모로 닮았다. 댓글 공작과 마찬가지로 베스트셀러 목록 조작이나 음원 순위 조작 역시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기만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구매할 때 그 책이 양질의 책이라는 판단 하에서 그것을 읽기 위해 구매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책을 구매하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한다. 이런 이유로 베스트셀러 목록을 조작하기 위해 책을 대량으로 사재기하는 출판업자는 잠재적 도서구매자들을 집단적으로 기만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부도덕한 여론 조작이다. 댓글 공작도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인터넷 토론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기만을 포함하고 있고, 그런 만큼 그것은 부도덕한 여론 조작이다.

그런데 댓글 공작은 베스트셀러 목록 조작이나 음원 순위 조작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악질적이다. 첫째, 댓글 공작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의를 조작했다는 점에서 국기를 문란하게 했다. 둘째,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의 희망과 관심 속에 이제 막 피어나던 인터넷 공론장의 새싹을 짓밟았다. 셋째, 국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할 국가기관인 국정원과 국방부가 앞장 서서 여론 조작을 목적으로 국민을 기만했다. 넷째, 공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민의 세금을 그런 파렴치한 범죄를 위해 사용했다. 다섯째, 댓글 공작 과정에서 가짜 SNS 계정을 만드는 것과 같은 부수적인 탈법을 저질렀다. (관련 글 : 국정원 댓 글공작 사건, '내란죄'로 단죄해야 한다) 이런 추악한 범죄인 댓글 공작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인 양 말하는 박 교수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인가?

박 교수는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한 대응책으로 댓글 공작은 정당한 국정원의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만약 북한이 대남심리전을 획책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여론 조작을 감행한다면, 국민들에게 그런 사실을 널리 알리며 주의를 당부하고 또 필요하다면 국내 포털 싸이트의 아이디 등록을 엄격하게 하고 사이버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면 될 일이다.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한 대응이 어떻게 국가기관이 세금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댓글 공작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책이 양질의 책이라는 사실이 그 책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출판업자의 조작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아무리 그 책이 동서고금의 명저라 해도 베스트셀러 조작은 여전이 조작이다. 부도덕한 기만이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응한다는 명분이 좋다 하더라도 국민을 기만하는 댓글 공작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이 추악한 여론 조작이라는 본성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박형준 교수는 댓글 공작에 대한 토론 말미에 그것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역시 아주 잘못된 것이다. 베스트셀러나 음원 순위 조작이 갖는 위력은 관련 업계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댓글 공작이 베스트셀러 목록 조작이나 음원 순위 조작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고 할 때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실제로 정보경제학이나 사회인식론과 같은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연구 성과 역시 여론 조작으로서 댓글 공작의 영향력이 결코 미미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지지한다.

분명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의 면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식견과 통찰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정치에 대한 나름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썰전에 출연한 박 교수가 댓글 공작에 대해서 이렇게 무지하고 몰상식한 말을 한다는 것이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댓글 공작이 발생한 이명박 정부에서 여러 중책을 맡았다는 사실이 댓글 공작에 대한 그의 분별 있는 판단력을 마비시키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