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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공작'이 특별히 추악한 여론조작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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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70-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조용필의 노래 가사처럼 낯익은 것일텐데, 이 말이 담고 있는 주장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해괴망측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장은 우리가 태어난 것이 민족 중흥이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일종의 목적론적 존재론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운가? 그럼 이렇게 표현해 보자. 당신과 내 삶에는 어떤 선천적인 목적이 있는데 그게 한민족을 중흥하는 것이고, 그런 목적에 봉사할 때에만 우리의 삶은 비로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된다고. 내가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고 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긴다 하더라도 민족 중흥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내 삶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고.

그렇게 말하고 나면 수 만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한국인이 한민족의 중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외국인들은 어떤가? 한국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로버트 할리와 같은 귀화외국인들은? 해외에 체류하는 한국계 외국인들은? 목적론적 존재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이 기막힌 주장을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슬프게도 7-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우리는 민족 중흥의 . . ."는 질문해서도 의문을 품어서도 안되는 금과옥조 같은 말이었다. 당시 모든 초중고 교과서는 빠짐 없이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그 첫머리에 담고 있었다. 국민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수업을 듣기 위해 숙제를 하기 위해 교과서를 펼칠 때마다 우리는 그 문장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우리는 민족 중흥의 . . ."을 말하고 듣고 외우다 보면 그 말이 어느새 명증한 진리로 다가 오는 것은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세뇌(brainwashing)당했다.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사고를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고 많다.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국민들의 생각을, 사상을, 여론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행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조지 오웰은 그의 명저 『1984』에서 빅 브라더가 기존의 영어를 '신어(Newspeak)'라는 새로운 언어로 교체함으로써 오세아니아(Oceania) 국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했다. 이런 언어에 의한 사상 통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자폭탄'이라는 표현과 '문자행동'이라는 표현을 두고 벌어진 최근 논쟁을 떠올려 보라. 그런데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사고를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은 이런 것 말고도 아주 다양하고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책을 불온서적으로 금지하고, 방송사나 언론사를 장악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며 중요한 시기엔 북풍 공작 같은 것을 일으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민의 관심이 돌리기도 한다. 관제 데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여론조작의 단골메뉴이다.

그러던 중 정보의 유통과 여론의 형성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인터넷의 등장이고 소셜미디어의 보편화이다. 소수의 정보제공자가 정보를 독점하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다수의 정보수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여론을 지배하던 불평등한 상황이 개선되면서, 모두가 정보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정보수용자인 평등한 소통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인터넷 뉴스의 댓글, 다음 아고라, 오늘의 유머와 같은 사이버 공간은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들이 공적 이성에 근거하여 함께 토론하고 숙의하는 하버마스적 공론장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충분했다. 성별, 나이, 재산, 직업 등에 따라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숙의한다는 것은 인터넷 이전 시대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선 그런 일상 속의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서로를 로그인 아이디로만 대면하는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론 욕설과 험담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인터넷은 시민들이 정보독점자들의 여론 조작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으며 공적 이성을 통해 함께 논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이유로 다음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공론장은 숙의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바로 이 새로운 공론장의 새싹이 무참히 침탈당했던 것이다. 바로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다.


국정원 댓글 공작이 사악한 것은 토론 자체, 담화 자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고 왜곡했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다양한 여론 조작의 사례를 보았지만 국정원 댓글 공작은 그 중에서도 특히 위험하고 사악하다. 국민교육헌장, 신언어, 불온서적이나 음악의 금지, 방송사나 언론사의 장악, 북풍 공작 등 지금까지 언급되었던 모든 여론 조작은 시민들 사이의 토론이 이루어지는 배경 조건을 훼손하는 것, 즉 그런 토론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정보 혹은 그들의 관심사항을 왜곡하는 것을 통해 실행되었다. 토론 자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고 왜곡하는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적어도 시민들이 토론하고 논쟁하는 담화의 공간까지 음험한 여론 조작의 손길이 미치지는 못했다.

국정원 댓글 공작이 사악한 것은 그것이 기존의 여론 조작과 달리 단순히 토론이 이루어지는 배경 조건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 상에서 벌어지는 토론 자체, 담화 자체를 직접적으로 훼손하고 왜곡했다는 사실에 있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 과정에 국정원은 댓글 알바들과 부도덕한 거래를 했고 인터넷 토론 공중을 집단적으로 기만했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 댓글 공작은 여타의 여론 조작과 비교해 봐도 훨씬 더 부도덕하고 악질적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인간의 노동력을 사고 파는 것에 익숙하지만 그것이 늘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노동을 거래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법적으로 금지된다. 성매매, 즉 성적 노동의 매매가 부도덕하기에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한 예이다. 마찬가지로 댓글 알바가 인터넷 게시글을 작성했고 그것에 대하여 국정원이 보상했다는 사실만 언급해서는 그것의 추악한 본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정확히 무엇을 거래했는지를 밝힐 때 그 추악한 본성이 비로소 드러난다.


국정원은 세금을 이용하여 영혼과 양심이 없는 "좀비 시민"을 양산했던 셈이다.


국정원은 댓글 알바가 인터넷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에 대한 대가로 알바비를 주지 않았다. 국정원의 알바비는 댓글 알바가 특정 논조의 게시글, 즉 이명박·박근혜를 옹호하고 그에 비판적인 세력을 음해하는 게시글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런 만큼 국정원과의 거래 하에서 작성되는 댓글에 관한 한 댓글 알바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였다.

댓글 알바를 언론매체의 칼럼기고자와 비교해 보자. 대가를 받고 글을 매매한다는 측면에선 둘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칼럼기고자가 언론사로부터 원고료로 받은 돈은 엄밀히 말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그의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데 드는 노력에 대한 대가이다. 언론사가 특정 논조의 글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원고료가 그 칼럼기고자의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의 칼럼은 표현의 자유가 발현된 결과물이다. 이에 반해 댓글 알바가 알바비로 받은 돈은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국정원의 지침에 따라 게시물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이처럼 국정원과 댓글 알바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거래했고, 그 결과 댓글 알바는 표현적 자유라는 기본권을 향유하는 민주적 시민이기를 포기했다. 시쳇말로 댓글 알바는 영혼과 양심을 판 것이다. 그렇게 국정원은 국민들의 세금을 이용하여 영혼과 양심이 없는 "좀비 시민"을 양산했던 셈이다.

좀비 시민의 양산이 댓글 공작의 첫 번째 단계라면, 그것의 두 번째 단계는 인터넷 토론 공중에 대한 집단 기만이다. 국정원은 좀비 시민들을 통해 뉴스 댓글이나 다음 아고라와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민주적 숙의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집단적으로 기만했다. 국정원에서 돈을 받고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린 댓글 알바의 목적은 애초 타인과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었다. 그들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떠도는 좀비 같은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는 인간들이 생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수행하는 담화 행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혼이 없는 좀비 언어가 인터넷 공간을 도배하면서 인간의 언어 행세를 하며 인터넷 공중을 속였다. 댓글 알바는 좀비 언어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민이 공적 숙의에 참여하는 것인 양 인터넷 토론 공중을 기만했던 것이다. 실제로 댓글 공작이 여론 조작에 있어 그렇게 효과적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공론장이 그러한 기만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에 말미암은 바 크다.


이런 추악한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끔 보다 엄정한 단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국정원 댓글 공작은 공익에 봉사해야 할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좀비 시민들을 양산하고 그들을 이용하여 인터넷 공중을 기만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한 파렴치한 범죄이다. 앞서 소개한 여느 여론 조작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악질적인 여론 조작이었던 것이다. 국정원 댓글 공작과 관련하여 며칠 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4년 형을, 그의 휘하에서 댓글 공작을 실행한 전 국정원 직원들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국정원 댓글 공작이 민주주의 근본인 민의를 조작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추악한 수법에 비추어 볼 때,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판결이 그에 대한 합당한 단죄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추악한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끔 보다 엄정한 단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관련 글 :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 '내란죄'로 단죄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국정원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5년이 지난 지금 그것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은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홍준표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댓글 공작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수백 수천 명의 댓글 알바들이 서로 보조를 맞추어 기만적인 게시글을 작성할 때 댓글 공작은 가히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나는 추측된다. 실제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믿음을 형성하는지에 관한 학문인 사회인식론(social epistemology)의 최근 이론들이 그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아쉽게도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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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