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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정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일까? |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 발언과 그 비판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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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 논객들 사이에 때아닌 직접민주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대통령이 지난 국민보고대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그 시초가 되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더 이상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식의 '간접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해 촛불 집회가 여실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국민 참여의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자고 제안하였다. 그 참여의 구체적인 방식(가령 집회 참여, 인터넷 댓글 달기, 정당 권리당원 참여, 정책 직접 제안)을 직접 언급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야당 일각에서 그리고 조선·동아와 같은 보수 미디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곧장 터져 나왔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의회를 무시하고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론에 대한 이런 비판은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근본적인 무지와 몰이해의 소치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형식적으로 대의민주제 혹은 의회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대의민주제' 혹은 '의회민주제'란 말 자체가 다소 애매하다). 모든 국민들이 각각의 법령과 정책의 수립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국민들의 의지를 대표하는 대의자(representatives)를 선발하고 그들에게 그러한 법령과 정책을 수립할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의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헌법은 비록 명시적으로 대한민국이 대의민주제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대의자의 선발, 권한, 책무 등에 대한 명문 규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대의민주제 국가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대한민국이 대의민주제 국가이고 그것을 헌법이 보장한다는 사실로부터 대의민주제가 헌법 정신이고, 헌법적 가치라는 결론이 곧장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비유를 들어 필자의 생각을 설명해 보자.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명문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5년 단임제가 헌법 정신이고 헌법적 가치인가? 명백히 아니다. 그것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피치 못하게 도입한 제도이지, 그 자체가 우리 헌법에 의해서 보호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가령,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자유, 평등, 정의, 인권)를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민주주의는 헌법적 가치이고 또 헌법 정신이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어느 누구의 손에 들어가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 헌법이라는 최상위법을 통해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불가침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 글을 참조하라 "블랙리스트 판결문에 드러난 황병헌 부장판사의 '무지'"). 그럼 대의민주제는 어떤가? 물론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대의민주제를 직접민주제에 대한 불완전한 대체제로 본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원칙상 직접민주제를 시행해야 하지만 물리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제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직접민주제와 대의민주제 중 하나가 헌법적 가치로 굳이 선택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대의민주제가 아니라 직접민주제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직접민주제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을 가장 정확하게 실현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여 대의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하자는 대통령의 발언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필자는 알 길이 없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대의민주제가 헌법적 가치라고 말하며 비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궤변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억지 궤변인 것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필자에게 대한민국 헌법에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명문 규정으로 포함된 만큼 그것을 공격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을 가하는 것이 억지 궤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대의민주제 혹은 의회민주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면 비록 그것이 헌법 정신이나 헌법적 가치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 옹호에 대한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판은 정당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그들의 비판을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비판은 억지스럽다. 이 비판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선 '대의민주제' 혹은 '의회민주제'가 정확히 무엇인지가 우선 정의되어야 할 터인데, 사실 그 말 자체가 애매하다. 특히 '대의(representation)'라는 개념은 정치철학적으로 매우 난해한 개념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대의민주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비판의 맥락상 아마도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과 보수언론은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선거에서의 투표로 한정되고, 선거가 없는 기간 동안 정치는 정치인에게 전적으로 자유위임되는 제도를 의도하지 않았나 싶다. 쉽게 말해, 국민들은 선거일에 투표만 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 정치는 정치인에게 모두 맡기고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대의민주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대다수의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야당과 보수언론이 말하는 대의민주제가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정치철학자인 헬렌 란데모어(Helene Landemore)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된 대의민주제가 (정치철학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표준적 정의로 인정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로버트 달(Robert Dahl)의 정의를 만족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즉, 야당이나 보수언론이 말하는 대의민주제가 말만 '민주제'이지 사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상술하자면, 달은 그의 저서 『민주주의와 그 비판가들(Democracy and Its Critics)』에서 민주주의를 다섯 가지 조건을 통해서 정의하는데, 그 조건들 중에는 시민들이 사회의 아젠다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control of the agenda)이나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effective participation)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야당이나 보수언론이 꿈꾸고 있는 대의민주제 국가에선 시민들이 이런 조건을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누가 앞으로 어떤 정치를 실현할지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 속에서 피선거인에게 투표하는 것 이외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길이 모두 막혀있기 때문이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실상 정치특권층의 과두정치이다. 그런데 야당과 보수언론은 이런 종류의 정치제도를 '대의민주제'나 '의회주의'라는 말로 포장하며 신성불가침한 헌법 정신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탐욕스런 정치특권층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필자뿐일까?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 발언을 억지 궤변으로 비판하자니 다소 힘에 벅찼는가 보다. 조선·동아의 기사에 명백한 억지가 있어 몇 자 더 적어본다.

1. 동아일보 사설 중 "직접민주주의적 정치는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안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 직접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직접민주주의를 가장 광범위하게 실현하고 있는 스위스에서 포퓰리즘이 다른 국가에 비하여 특히 더 문제가 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2. 조선일보 기사 중 "국회를 통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대의제의 핵심인데,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로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면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진다"

- 국회를 통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대의제의 핵심이라는 이 황당한 주장은 또 무엇인가? 국회도 권력이다.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로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면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진다"이라는 말은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박근혜의 말과 같은 개소리(bullshit)에 불과하다. (관련기사 : 박근혜의 개소리와 거짓말에 대한 학문적 고찰)


*오마이뉴스에도 송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