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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와 "기레기"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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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서민 교수의 "문빠는 미쳤다"는 글로 인터넷이 한동안 들끓었다. 서 교수는 그 글에서 한중 정상회담 기간 발생한 '기자폭행 사건' 관련, "문빠들은 오히려 폭행을 당한 기자가 맞아도 싼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문빠들의 병이 깊어져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의 글은 굳이 긴 반박이 필요 없을 만큼 조잡하다. 누가 어떤 연유로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인터넷 게시글 중 일부 과격한 표현이 담긴 것을 보고, 그 게시글을 문재인 지지자들이 썼다고 넘겨 짚은 후, 거기에 "문빠"라는 딱지를 붙이며 문빠가 미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배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게시글들을 모두 문재인 지지자들이 썼다손 치더라도, 왜 서민 교수는 그들과 자신의 차이를 합리적인 의견의 차이로 인정하지 못할까? 문재인 지지자들이 미쳤다고 말하는 서민 교수는 문빠가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민주주의를 유린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기는 서민 교수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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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옹호하겠다는 결기로 글을 썼다는 서민 교수의 글이 정작 현대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와는 정반대의 논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그의 유명한 "성북구청 연설"에서 언급한 민주주의적 공론장은 시민들이 서로를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간주하며 이성적 논의 능력과 이성적 논의 결과에 따라 행위할 능력이 있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형성된다(위르겐 하버마스나 조슈아 코헨 이론을 참조). 쉽게 말해 시민들이 서로를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인정할 때 그 때 비로소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종북좌파", "꼰대", 아니면 "꼴통"이라고 여기는 순간 공론장의 토대는 무너진다. 그런데 서민 교수는 취약하고 부실하기 그지 없는 근거에서 열성 문재인 지지자들을 "미쳤다", "너희들은 환자야", "치료가 필요해"라고 선언해 버렸다. 열성 문재인 지지자들과는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않다는 것을, 그들에겐 이성적 논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70% 대를 상회하는 지금 이는 공론장의 가능성, 숙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하겠다는 말 다름 아니다. 정작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은 서민 교수 자신이 아닌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진짜 문제는 서민 교수가 아니었다. 인터넷의 망망대해에는 다양한 글이 있기 마련이고 서민 교수의 글은 그 중 다소 정제되지 않은 글의 하나로 넘기면 그만이었다. 정작 이번 논란을 키운 것은 사회의 건전한 여론을 형성한다는 공적인 사명은 철저히 망각하고 서민 교수의 자극적인 표현을 퍼뜨리기에 바빴던 일부 기자들이었다. "문빠가 미쳤다"는 서민 교수의 글이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문빠"라는 정치·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하등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고 나는 단언한다. 반대로 그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두고 국민들 사이에 나타나는 반목과 갈등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대표적인 민주주의 사상가인 밀(J.S. Mill)이나 루소(J.J. Rousseau)는 시민들의 자율성, 능동성, 책임성, 도덕성 등을 고양시킴에 있어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정치제도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설파하며 그것을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할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로 제시하였다. 7-80년대의 군사독재, 그 이후의 권위주의 정권, 김대중·노무현의 민주정부,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퇴보, 그리고 작년의 촛불 집회를 거치며 한국 시민 사회는 조금씩 더 성숙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리고 그 도도한 진화의 마지막 길목에서 우리는 "문빠"라고 하는 미증유의 자발적 어용시민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문빠 현상의 본질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를 통해 문빠들이 좀 더 바람직한 민주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칭찬할 건 칭찬하고 격려할 건 격려하며 또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

서민 교수는 그의 글에서 문재인 지지자들을 앞뒤 가리지 않는 정신병자쯤으로 취급했고, 일부 기자들은 이를 받아쓰고 퍼나르기 바빴다. 서민 교수의 자극적인 표현이 기사의 조회수를 높일 거라는 생각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서민 교수가 자신들이 하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던 말을 대신 해줘서 그랬는지 알 길은 없지만, 서민 교수의 글에 대한 일부 기자들의 보도 행태는 정말 비판 받아 마땅하다. 언론이 사회의 건전한 공론을 만드는 공기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기자는 "기레기"로 전락한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