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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공은 왜 선로 안쪽에 들어가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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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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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 대한 해석은 내러티브를 요구한다. 내러티브는 사고를 어쩌다 마주친 불행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배경 때문에 '일어날 만했던' (내지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으로 틀지우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해석의 창이 있기에 우리는 사고를 이해할 수 있고, 재발을 위한 계획도 세울 수 있으며, 슬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다. 그릇 없이는 어떤 물도 담아낼 수 없는 것처럼, 납득할 만한 내러티브가 없는 사건 해석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할지라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 수백 장에 달하는 세월호 보고서가 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사건이 우리에게 "명쾌하게 납득되지 않는"(한겨레 21) 이유는 바로 이 내러티브의 부재 때문이다.

내러티브를 만드는 과정은 그 본질상 정치적이다. 어떠한 행위자를 사건의 내러티브에 포함시키는지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는 맥락과 사회-기술적 해결책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구조활동의 미숙함을 세월호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함에 따라 해경이 해체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신병자의 돌발행동이라고 호명하자 조현병 환자들에게 주목이 쏟아졌다. 틀짓기/틀허물기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참사 이후의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사고에 대한 내러티브가 관련된 행위자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다양한 잣대로 판단해보는 일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틀짓기는 존재할 수 없기에, 우리는 또한 다양한 생각의 경로를 추구하면서 행위자의 비중을 실험적으로 조정해보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볼 때 구의역 사고의 내러티브는 훨씬 빠른 수렴의 과정을 거친 듯하다. 많은 언론이 이 사고를 "서울메트로의 허술한 관리 체계가 빚은 인재"라고 부른다(서울신문). '2인 1조' 안전수칙을 지켰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가 "사람 목숨보다 비용과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경향신문)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엔 강남역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던 업체 직원이 같은 이유로 사망"(헤럴드경제)라는 사실은 이를 보충하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이 내러티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두고 싶다. 다만 이러한 틀짓기가(다른 어떤 틀짓기들과도 마찬가지로) 특수한 (인간 및 기관) 행위자만을 살인범으로 내세우며 특정한 (사회-경제적) 해결책만을 강제하게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예컨대, 이러한 내러티브 하에서 "안전관리 업무 인력의 직접 고용만이 유일한 해결책"(경향신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합리적이지만 또한 제한적이기도 하다. 여러 언론이 이미 훌륭하게 "위험업무의 외주화"를 원인으로 지목해 준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이 내러티브를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강화할 것인지의 문제다.

사고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지만 아직 던져지지 못한 질문들을 자문해보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우리는 19살 청년 수리공이 왜 선로 안쪽에 들어가야만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듣지 못했다. 스크린도어는 선로에서 수 센티미터 정도 바깥에 위치한다. 순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스크린도어 수리는 선로 바깥쪽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강남역과 구의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는 그렇지 못했다.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의 장애물을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가 선로 바깥에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구조로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살 청년은 이렇게 특수한 기술적, 디자인적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선로 안으로 들어간 셈이다.

공교롭게도 장애물 감지센서는 스크린도어의 여러 부품들 중에서도 가장 자주 고장 나는 부분으로 꼽힌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공개된 스크린도어 고장 현황에 따르면 2012년 스크린도어 고장 총 2,477건 중 장애물 감지센서 고장은 807건으로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장애물 감지센서를 포함한 다양한 스크린도어 고장의 주 원인으로 MB 시절 도입된 최저 입찰제를 꼽는다. 안전보다는 경제성을 중요시해 싼 스크린도어를 들여오다보니 고장이 잦아졌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을 따르자면 위험작업을 외주화하고 원가를 절감하는 경향은 감지센서의 불량이라는 형태로 물질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강남역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는 감지센서의 고장이 잦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컨대 정수영 서울메트로 안전관리본부장은 "안전문 장애물 감지센서가 이물질에 의해 고장이 많이 나는데 레이저 스캐너로 바꾸면 다소 예산이 소요되지만 선로 측이 아니라 승강장쪽에서 열고 정비할 수 있다"(머니투데이)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레이저 스캐너'로의 전환은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강남역 사고가 발생한 2015년 8월부터 현재까지 9개월 여 동안 "레이저 스캐너는 전체 121개역 가운데 16개역에서 교체가 된 상태"(연합뉴스)로 머물렀다.

이러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던 청년이 사망했다'는 명제는 '장애물 감지센서'라는 새로운 행위자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시 쓰일 수 있다.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던 청년이 사망했다'
(기존 내러티브) '서울메트로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용역업체 청년이 사망했다'
(추가된 내러티브) '선로 안쪽에서만 접근 가능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의 장애물 감지센서를 정비하던 청년이 사망했다'

다시 쓰인 명제는 사고와 '외주화'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한다.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 주목받지 못한 질문들을 부각시킨다. 왜 장애물 감지센서는 애초부터 레이저 스캐너로 디자인되지 못했나? 시스템의 설계와 도입 단계에 문제는 없었나? 누가 스크린도어의 설계와 도입에 관여했는가? 다각화되는 내러티브는 "위험업무의 외주화"라는 기존의 이해를 강화/보완하면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힌다. 또한 이러한 질문의 연쇄 작용 속에서 우리는 보다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의 대책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장애물 감지센서의 예시는 참사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조사의 경로를 만들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두 반응이 서로 다른 경로를 따르면 상이한 부산물을 내놓는 것과 같이, 참사를 여러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성을 지닌 교훈과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한 청년의 비극적인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사고의 내러티브를 다각화할 여러 질문을 던지면서 다방면의 학습의 기회를 모색하는 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스크린도어 사고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는 이미 던져진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는 수준을 넘어 내러티브를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다각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서울메트로의 자체적인 조사와 경찰의 수사, 또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기존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생각의 경로를 추구해 이를 이해할만한 이야기로 정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업무의 외주화"가 이 비극의 메인 플롯이라면, 이제부터 우리는 수리공이 그 장소, 그 시간에 놓이게 된 복합적인 '콘텍스트'를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관점으로 치밀하게 서사해내야한다. 이러한 서사의 작업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경찰이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구조적 문제"를 실질적인 차원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무게는 수리공의 생명만큼이나 무거워야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