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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변형의 공간이 주는 풍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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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아트페어 2017'이 열린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에어비앤비 리스팅(숙소) 전경

지난 2~3일 이틀 동안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2층집에서는 '하우스 아트페어 2017'이라는 미술작품 전시 행사가 열렸다. 이곳과 다른 전시공간의 확연한 차이점은 집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예술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주최 쪽에서 나눠준 책자에 적힌 '행사를 즐기는 방법'에는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집처럼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세요."

집처럼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말 그대로 '집'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일반적인 집은 아니다. 에어비앤비 리스팅(숙소)이다. 에어비앤비는 이처럼 공간을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 유연함은 바로 지금, '스트리밍'처럼 트렌드가 자주 바뀌는 시대에 굉장히 큰 가치를 갖는다. 에어비앤비는 공간을 유연하고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원하는 기간 동안 게스트(손님)에게 임대해주고, 다른 용도로 쓰고 싶을 때는 또 바꿀 수도 있다.

공간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으려 애쓴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야만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다수가 원하는 용도를 창출하지 않는 공간은 외면 받고, 그런 공간이 많은 지역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유연한 공간은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의 트렌드를 빨리 따라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도시재생에 적용할 수도 있다. 도시재생이란 쇠퇴한 지역의 용도를 바꿔 다수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렇게 유연한 방식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더불어 다채로운 재미를 만들어주며 도시적 매력을 극대화 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와 같이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공간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이다. 최근 출간된 '로컬 지향의 시대'(알에이치코리아)를 보면, 일본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들은 마치 '밀레니얼'(1980년 초부터 2000년 초 출생한 세대)처럼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또, "수입은 그리 많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길 선호하고, 하고 싶은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구한다. 즉 돈보다는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에어비앤비 슈퍼호스트면서 자신의 에어비앤비 리스팅에서 아트페어 행사를 연 양미애씨는 "에어비앤비로 공간을 활용하니 아트페어 같은 의미있는 행사도 열 수 있었다. 또 아트페어를 주관한 분들이 홍대 주변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고 있는 분들이어서 더욱 뜻 깊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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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아트페어 2017'이 열린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에어비앤비 리스팅(숙소) 내부 모습

에어비앤비가 그러하듯, 공간을 유연하고 풍요롭게 활용하려는 욕구는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등장한 '가라지가게'도 그와 같은 사례다. 가라지가게란 이름이 붙어 있는 '쇼룸'은 원래 주택의 차고다. 차고에는 여전히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이 자동차는 얼마든지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차고와는 달리 벽면 양 옆에는 수납장이 전시되어 있다. 바로 이 수납장이 가라지가게가 주차장이란 공간을 배경으로 내놓은 상품이다. 수납장은 '가라지'(차고)에서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좋고 가벼운 느낌이다.

이곳을 기획한 건축가 장영철 와이즈건축 소장은 "보통 건물의 1층은 길거리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임에도, 매우 배타적인 공간인 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면서도 항상 비어있는 이 공간을 작게라도 쓸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런 수납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보통 주차장이 많은 골목은 어두침침하고 사람이 없어 길거리를 침체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라지가게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쓰임새가 생긴 이 공간은 은은한 빛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즐겁게 해준다. 에어비앤비로 사용되는 공간이 '팝업 미술관'으로 열리며,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듯이, 가라지가게 역시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도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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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본 서울 연희동 가라지가게의 모습. 은은한 불빛이 어두운 거리를 밝혀주며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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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주차장의 모습. 밤에는 길거리를 더욱 어둡고 두려운 공간으로 만든다. '외부차량 주차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도시에서 주차장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장 소장의 시선은 전기차가 상용화되는 조금 더 먼 미래에까지 뻗어 있다. 원래 자동차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소파와 히터, 에어컨도 갖추고 있다. 이 자원을 활용해 주차장을 마치 거실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연이 전혀 없는 전기차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유연한 공간의 활용법이 지저분하고, 배타적인 주차장을 거리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시의 놀라운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연한 공간은 도시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제인 제이콥스는 명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 구역들은 2가지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여서 밤낮으로 상이한 시간에 상이한 목적의 사람들을 끌어와야 한다"고 말하며 도시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활기찬 도시는 다양성에서, 그리고 유연한 공간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