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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십자가도 없는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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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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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통령의 이름은 정부 회의록보다 공소장에 더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공모하여'의 주어로 돼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은 듯합니다. 실제로 공범 사건 피고인들은 "내가 언제 저들과 공모했느냐"고 반발한다고 합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전체 범행을 계획하고 의논하는 과정이 없었더라도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뜻이 합쳐지면 공모관계가 인정됩니다. 오죽 답답했는지 한 판사는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해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 혐의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물증은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과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입니다. 그들은 왜 그 중요한 증거들을 없애지 않은 걸까요. 유력한 추론은 '모든 걸 혼자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이겠지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안 전 수석이 업무수첩을 없애지 않은 이유가 열 가지라면 그중 하나는 대학 교수 출신으로서의 '마지막 양심' 아니었을까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정확한 사랑의 실험』)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진술은 냉정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최순실·김기춘·우병우에게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복잡하게 나쁜 사람'의 관점에서 '공모하여'의 범위는 청와대 비서실과 친박(親朴) 의원, 기업인들을 넘어섭니다.

최순실 일당이 범죄에 사용한 암묵적 수단은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였습니다. 청와대 지침에 따라 영혼 없는 수사를 하다가 "다리 부러진 사자에게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조응천 의원)가 된 검찰에 도저히 박수를 쳐줄 수가 없습니다. 반성이 빠진 검찰의 변신은 언제고 과거로 복귀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몸담은 언론도 하이에나입니다. "비판 언론엔 불이익을 주라"(김기춘 전 비서실장)는 위협이 전해진 걸까요.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땐 내부자 노릇을 하다가 힘을 잃자 무분별한 의혹까지 앞다퉈 보도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편들던 일부 종편 패널들은 미어캣처럼 두 손을 비비며 시시덕거립니다.

비박(非朴)은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장본인이 이제 와서 "박 대통령 만난 게 정치인생 중 가장 후회스럽다"(김무성 전 대표)고 하는 건 비겁하지 않나요. 야당 역시 지난 4년간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치열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부디 광장의 시민들을 야당 지지자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를 이끄는 이들 가운데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 사이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인 이벤트가 돼 가고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파면해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에 대한 참담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야당과 비박은 탄핵소추 정족수(200명)를 넘을 수 있을지 표 계산에 열심이고요. 탄핵 논의 자체를 수치로 여겨야 할 대통령은 도리어 "해볼 테면 해 보라"는 투입니다.

탄핵 사유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반성 대신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할지, 안 할지 결론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박근혜가 누군지, 문재인이 누군지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만 관심이었던 대선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 꽃도, 십자가도 없는 과정들이 또다시 환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운명의 1주일입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되는 직후라도 대통령이 하야 발표를 하길 기대하지만 희망사항일 테지요. '복잡하게 나쁜'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시민들은 검찰 개혁, 재벌 개혁, 언론 개혁을 위해 비정하고 집요하게 주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저 자신, 그 대상이 될지 모르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 밤 광화문에서 촛불을 껐다 켜는 '저항의 1분 소등' 행사가 있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이 어둠이요 빛입니다. 새로운 세계는 스스로 변화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당신과 저의 각오에서 시작됩니다.

* 이 글은 중앙일보 11월 29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