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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행동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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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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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2월. 전직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섬을 탈출했다. 유력 신문의 1면 제목은 상황 변화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따라갔다. '살인마, 소굴에서 탈출'→'폭군, 리옹 도착'→'나폴레옹, 파리 도착 예정'→'황제폐하 환궁'. 이래서 먹물들을 비겁하다고 하는 걸까.

2016년 11월. 바뀌고 있는 건 계절만이 아니다. 검찰 수사는 정확히 201년 전 프랑스 신문의 역순이다. 최순실씨 고발 사건 형사부 배당→박근혜 대통령 "재단 자금 유용 엄벌"→검사 두 명 추가 투입→문건 유출 대국민사과→특별수사본부 구성→광화문 집회→박 대통령 조사.

검찰 수사의 볼륨을 높여 온 건 분노한 시민들의 함성이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의 밤을 밝힌 수많은 촛불은 분노이자 기적이었다. 그날 더 놀라웠던 것은 작은 빌미라도 줘서 역사의 방향을 되돌리게 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이었다.

이제 자연인 박근혜씨가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음은 분명해졌다. 그 이유는 헌법과 법률을 어겨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했다는 데 있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박 대통령과 최씨 일당은 사실상의 범단(범죄단체)"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것은 여야의 특검 합의 때문이 아니다. 그간 방조범 노릇을 해 온 조직의 존립 근거를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 박 대통령은 마지막 정당성까지 잃게 된다. 그는 지난 1월 26일 법무부 등 업무보고에서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말해주듯 작은 빈틈이라도 방치해선 안 된다"던 그 자신이 '깨진 유리창'이 되고 말았다.

이 상태에서 "대통령은 내치에서 손을 떼고 외치만 맡아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국군 통수는 내치인가, 외치인가. 내치와 외치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당장 내년 초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는 것만큼 블랙코미디는 없다.

지금 시급한 일은 2선 후퇴든, 퇴진이든 박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찾아 거리로 나선 중고생들에게 응답하는 길이다. 만약 그가 제 발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한다면 탄핵 외길밖에 없다. 여기엔 세 가지 전제가 붙는다. ①수사 기록에 '대통령의 범죄'임이 명시돼야 한다. ②국회에서 부결됐을 때 그 후폭풍을 제도권이 감당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③여야 합의가 가능한 헌재 소장 후보가 제시돼야 한다.

국정 공백은 국회에서 선출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 권한대행 총리로 메워야 한다. 헌법상 '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도록' 돼 있다고? 대통령에 의해 헌정 질서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황이다. 손상된 헌정 질서를 복구할 방법을 어떻게 헌법 자구에서만 찾을 수 있는가.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불발된 박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상상력의 빈곤을 본다. 명칭마저 구시대적인 밀실 회동 추진이 광장의 마음들을 분열시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총리 한 사람을 상대로 분풀이를 하는 듯한 야당 의원들의 모습은 '책임정당'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모욕 주기'가 한순간 통쾌할 수 있지만 갈증만 더할 것이다.

그날 광장의 목소리들은 진지하고 절박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은 "세월호를 기억해 주세요"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성과연봉제 폐지"를 외치고 있었다. "박근혜 하야" 촛불 밑에는 엄청난 변화의 에너지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 에너지들이 허탈감으로 바뀐다면 그 다음에 등장하는 건 '엘바섬의 나폴레옹' '한국의 트럼프'일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권력은 논쟁에서 시작돼 행동으로 마무리된다. 촛불을 드는 것도 행동이고, 시민들이 동의하는 정치 일정을 만들어내는 것도 행동이고, 물러나는 것도 행동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행동이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