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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국정 농단했나' 대통령의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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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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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비켜." 시민들의 외침이 서울 청계광장을 울리던 지난 주말 오후 청와대에선 속보가 쏟아졌다. 검찰과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놓고 정면충돌한 것이다. 최순실씨 의혹에 시종 무력하기만 했던 검찰이 정의로운 검찰로 돌아온 것일까. 그렇다면 "그간의 정치적 수사를 반성하고 국민의 검찰이 되겠다"는 검찰총장의 한마디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 어제 최순실씨가 모자를 눌러쓴 채 울먹이며 검찰청에 들어갔다. 검찰은 최씨를 최대한 신속하게 구속하려 할 것이다. 일단 집어넣어야 여론이 수그러들 테니까. 다음 수사 대상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안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주도한 혐의(제3자 뇌물)다.

문제는 최씨 등을 재판에 넘길 때다. 이들의 공소장에 대통령 부분을 어떻게 기재해야 하는가. 검찰 초유의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검찰이 물러설 곳은 없다. 박 대통령이 이미 자신의 관여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논의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2월 기업인들에게 문화·체육 투자 확대를 부탁드린 바 있고...."(10월 20일 수석비서관회의)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최씨로부터)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자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10월 25일 대국민사과)

국정 농단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지층에 호소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자기 발목을 잡은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해서 몸통이 바뀌진 않는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말한다.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서 자백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단에 관한 언급이 추상적이긴 하지만 안종범이 최순실만을 위해 모금을 지원했겠는가. 대통령 자신이 인정한 마당에 관련자들의 공소장에 대통령 부분을 어떻게 적을지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

방법은 세 가지다. ①공소장에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계속 수사 중'으로 놔둔다. ②공소장에 '박 대통령과 공모해'나 '박 대통령의 지시로'를 넣는다. ③'대통령은 헌법 84조에 따라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으므로 임기가 만료되는 2018년 2월 25일까지 시한부 기소 중지한다'는 결정문을 쓴다. 어떤 선택이든 대통령과 검찰 중 어느 한쪽은 위험해진다.

최후의 비상구는 사건을 '진실게임'의 늪 속에 밀어넣는 것이다. 최씨가 전격 귀국해 "단두대"(변호인 표현)에 오른 건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니까 이만큼 받잖아"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안종범 전 수석이 대포폰 전화와 문자로 재단 관계자를 회유하려 한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핵심 물증인 태블릿PC를 최씨 측이 문제 삼고 나선 배경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언니 의리 지키기"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 대통령 닉슨이 사퇴한 것도, 5공(共)이 무너진 것도 사건 은폐·축소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 자신이 국민 앞에서 온전한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게 헌법이 부여한 마지막 책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착각을 현실로 만들어준 정치검찰과 친박, 수구 세력도 함께 잘못을 자백해야 한다. 국민을 주권자로 대하지 않은 '박근혜 국정 농단'을 비호하고 떠받쳐 온 그들이 없었다면 지난 4년의 일들이 가능했을까. 지금 와서 "우린 최순실을 몰랐다"는 말 뒤에 숨기 급급한 모습들이 가소로울 뿐이다.

오직 진실만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다. 샤머니즘 정치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으려면 불의한 권력을 부검해야 한다.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밤늦도록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귀한 자식을 군대에 보내온 시민들의 일상이 민주공화국을 지켰다. 어차피 이 나라를 지켜온 건 대통령이 아니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