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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에 가로막힌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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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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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백남기(69)씨가 지난 일요일 오후 숨졌다.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뒤 317일간 중환자실에 나타나지 않았던 경찰은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병원을 에워쌌다. 목적은 부검이었다. 사건 당시 영상과 진료 기록들이 있는데 굳이 시신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난 12일 국회 청문회에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백씨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경찰력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던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는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주목해야 하는 건 백씨가 쓰러졌던 지난해 11월 집회 당시 경찰 지휘 책임자들(강 전 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의 면면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옛 치안비서관)을 거쳤다. 집회 당시 그 비서관 자리에 이철성 현 경찰청장이 있었다.

 나는 청와대 비서관 경력자들이 경찰 수뇌부를 장악한 것이 백씨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고 믿는다. 구중궁궐에서 대통령과 수석들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사람을 청와대에서 나간 지 8~9개월 만에 경찰 총수 자리에 앉힌 건 경찰조직의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한 것이다. 청와대의 한마디 한마디에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시위가 아무리 과격하다고 해도 물대포를 사람 머리 부위에 집요하게 직사(直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시위대의 청와대 방면 행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문제였던 것 아닐까. 차벽(車壁)이 뚫리는 것만큼 아찔한 일은 없었던 건 아닐까. 검찰이 백씨 사건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도 그 언저리에 있는지 모른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까닭은 시민들의 의견과 주장을 시시각각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투표할 때만 의견을 밝히고, 투표하지 않을 땐 '가만히 있으라'는 건 헌법 위반이다. 집회와 시위가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게 경찰의 임무다. 백씨 사건은 인권과 헌법이 아니라 차벽의 이데올로기가 경찰 수뇌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차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보이지 않는 차벽들에 가로막혀 있다. 지난 금요일 국회에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황교안 총리와 장관들이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를 벌였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밥 좀 먹게 30분만 달라"며 정회를 외쳤다.

 자기들 배가 고프면 국민 배고픈 줄도 알아야 한다. 거리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특조위와 유족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가. 야당의 해임건의안이 잘못된 것이라면 논리와 팩트로 반박했어야 한다. 어제 이정현 대표의 '무기한 단식 농성' 뉴스는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란 영화 대사('카페 소사이어티')를 떠올리게 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통령 한 사람만 바라보고 일하라. 그러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보호해 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공감은, 시민에 대한 공직자의 의무는, 개인의 양심이나 소신·논리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비선 실세' 의혹이 우후죽순 불거지는 상황에서도 "유언비어 의법조치"(황 총리)란 차벽만 높이 올리고 있다.

 인정한다. 김 장관과 측근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좋은 보스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무위원, 여당 의원들의 보스를 넘어 국민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리더여야 한다. 대통령이 우려하는 '비상시국'을 극복할 힘은 시민들 마음에서 나온다. 국가 권력에 목숨 잃은 사람에 대한 애도부터 보여 주길 바란다.

 요즘 섬찟한 건 비상식적인 일들이 정상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시대의 뉴노멀(새로운 기준), 신창타이(新常態·새로운 상태)란 헛헛한 농담들이 오간다. 차벽이 만들어 낸 착시일 뿐이다. 시민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차벽은 무너지게 돼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