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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대의 네 가지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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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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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서히 젖어들었다." 지난주 금요일 구속 기소된 진경준 검사장에 대해 한 검찰 간부가 내린 평가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 등과의 거듭된 만남, 오가는 선물 속에 영혼이 마비돼 결국 "꼭 내 돈으로 사야 하냐"며 공짜 주식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렇게 서서히 부패에 젖어든 것이 진경준만일까.

그는 극단적인 우화일 뿐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기업 압수수색을 할 때마다 법인카드 사용 장부에서 숱한 공무원, 기자들 실명이 튀어나오곤 했다.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이후엔 수십 명, 수백 명씩 수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밥자리의 헌법이 바뀌는 것이다. 말하는 습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1. "식사요? 생각 좀 해 볼게요."

밥자리와 술자리, 골프 모임을 놓고 불편한 고민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겼던 일들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밥값이 얼마인지 따져야 하고, 그 자리에 누가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어떤 행위가 '통상적인 업무범위'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지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정당한 공무의 범위, 취재 활동의 범위도 확인될 것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게 아니다. 헌재 결정문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을 근절하고"(10쪽), "언론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권력을 견제할 수 있게"(21쪽) 되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24쪽)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직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아닌가.

2. "오늘 밥값은 각자 냅시다."

오해하지 말자. 김영란법의 원칙은 "3만원 이하로 얻어먹으라"는 게 아니다. 더치페이를 하라는 거다. 2만9000원, 2만9900원짜리 음식 메뉴나 4만9000원짜리 선물 출시를 부각시키는 건 옳지 않다. 소비 위축론도 마찬가지다. 고급 한정식 집은 문 닫을지 모르지만 설렁탕 집, 김치찌개 집을 찾는 발길은 늘어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밥값이나 선물 대금은 대개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동안 공직자와 기자들은 국민이 낸 세금, 주주·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나눠 쓴 것 아닐까. 정책활동, 취재, 홍보란 명분으로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값비싼 식사와 선물이 무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돈 있고 힘 있는 세력의 이데올로기에 젖어든다는 데 있다.

3. "2차요? 그만 집에 가시죠."

김영란법은 완벽한 법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완성시킬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국민권익위는 법원 판결에만 맡기지 말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관계자들은 편법이나 꼼수로 법망을 피해 가려 하지 말고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 2차 가지 말고, 집으로 흩어지자. 못 봤던 책도 읽고, 가족과 드라마도 보자.

최악은 '지키면 바보가 되는 법' '걸리면 재수 없는 법'이 되는 것이다. 과속하다 경찰에 걸리면 억울하지만 단속카메라에 찍히면 내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게 인간이다. 검찰과 경찰은 표적수사의 미련을 버리고, 초기에는 수사력을 집중해 기계적으로,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더 공고해질 학연·지연·혈연을 무력화할 대책도 나와야 한다.

4. "의식을 지배하는 건 위장이다."

9월 28일 전날까지 골프장 예약이 꽉 차고, 미리 선물을 주고받고, 송년회를 앞당기는 건 웃픈(웃기고 슬픈) 풍경이다. "일은 일이고, 밥은 밥 아니냐"는 유혹이 계속될 앞날을 예고한다. '대(代)를 이어 부패하자'는 게 아니라면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다.

나도 관행이란 이름에 젖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적극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 못 이기는 척 편승해 온 게 더 비겁하다. 마지막 화법은 스스로를 향한 참회요, 경고다.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뇌가 아니라 위장이다. 식탁에 누구와 앉아 있느냐가 나를 규정짓는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