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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가습기 살인'을 놓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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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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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며칠 전이었다. 지난해 같은 부에서 일했던 후배 기자 H와 마주쳤다. 안부를 묻고 지나려는데 H가 머리를 긁적였다.

부장, 요즘 신문·TV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보면 죄책감이 들어요. 2014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갈 때마다 거의 매일 그분들을 봤거든요. 피켓 들고 수사를 촉구하던 그분들 앞을 그냥 지나치곤 했어요. 검찰이 나서지 않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얼마나 크게, 몇 번이나 쓸 수 있을지 견적도 나오지 않고... 검찰이 뒤늦은 수사로 비판 받고 있기는 해도 기자들 감수성이 검사들보다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리에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내가 사회2부장으로 있던 2014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말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언제, 어떻게 다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현장 기자들이 보고와 기사를 올리는 집배신에 들어갔다. 순간 팔에 작은 소름이 돋았다. 관련 보고는 일곱 건이었다. 옥시 3차 조정기일, 서울고법 "옥시 허위광고 시정명령 정당", 피해자 국가 상대 소송 패소, 경찰 8개 업체 검찰 송치....

기껏해야 서너 줄짜리 기사로 처리했을 뿐이었다. 기사화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H가 서 있던 일선(一線)도 뚫렸고, 내가 서 있던 이선(二線)도 뚫렸다. 그때 왜 나는 후배 기자들에게 달라붙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어떻게 그 보고 일곱 건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을 읽어내지 못했나. 2011년 9월 질병관리본부 발표 후 가습기 살균제는 내 머릿속에서 '이미 끝난 사건'이었던 것인가. 살균제에 23개월 된 아들을 잃은 부은정(44)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자신도 2급 피해자인 은정씨는 불안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약자가 승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신현우(전 옥시 대표) 그 사람이 구속됐지만 제대로 처벌받고 진상규명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기자님, PD님들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전화하고 문자 보내세요. 감사하면서도 '갑자기 왜들 이러지?' 당황스럽고 불안해요. 대기업들이 있고, 김앤장이 있고 쉽게 끝날 일이 아닌데, 시간이 길어지면 '저 얘기 또 나왔어?' '지루해' 이렇게 반응할 거고, 저희는 다시 처참하게 버려질 것 같고....

지난 5년간 피해자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든 건 언론이었다. 아무리 절규하고 발버둥쳐도 언론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인 건 수사가 본격화되고 시민들의 분노가 불붙은 뒤였다. "언론에서 처음부터 추적보도를 해줬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지 않았다."(최승운 유가족연대 대표, 5월 3일 뉴시스)

쉬지 않고 터지는 사건에 한정된 취재인력, 단발성 보도까지 알리바이는 차고 넘칠 것이다. 하지만 비상벨을 울리지 않은 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특별수사팀이 소환하고, 발표하고, 보도자료가 나와야 움직이는 게 기자이고 언론일까. 그러고도 '악마의 보고서'를 썼다고 대학 실험실에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지금 나 자신을 포함해 한국 기자들은 '악마의 관성'에 갇혀 있다.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탐사'하기보다는 발표 내용, 발설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퍼 나르기' 하는 데 급급하다. 나태하게 방관하다 사냥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그제야 달려들어 과잉 취재를 한다. 사자가 먹다 남긴 고기에 코를 처박는 하이에나와 다른 게 무엇인가.

"자네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은폐를 방조해 온 변호사가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 친구에게 묻는다. 이 질문은 눈앞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한국 기자들에게도 유효하다. 잠재의식 속 성역이 기업이란 점이 다를까. 은정씨는 마지막 부탁이 있다고 했다.

진심으로 기사를 써 주시고, 기간이 얼마나 되든 끝까지 써 주세요. 기름 끼얹듯 확 타올랐다 꺼지는 불이 아니었으면 해요, 제발.

26년 기자생활에서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한 "제발"은 없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