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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도킨스의 친절한 지적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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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DAWKINS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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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남의 과학책 산책]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정은 옮김/옥당 펴냄(2016)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올해는 각별한 해다. 74살인 도킨스는 지금까지 13권의 책을 썼다. 그중 첫 책이자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가 올해 출간 40주년이고, 3번째 책 <눈먼 시계공>은 30주년, 5번째 책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원제)는 20주년, 9번째 책 <만들어진 신>은 10주년이다. 더구나 두 권으로 쓴 자서전의 2편이 올해 출간되었다.

출판사들뿐 아니라 언론도 여기 주목하여, 그의 이름난 저작들의 의미를 조명하는 기사를 냈다. 그런데 정작 도킨스 자신은 감회를 밝히는 어느 글에서 우리가 10주년의 배수로 뭔가를 기념하는 것은 어쩌다 우리에게 손발가락이 10개씩 주어졌기 때문이라며, 만일 진화의 우연으로 우리 손발가락이 8개였다면 올해 이런 기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쿨하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서조차 논리를 내세우다니 어째 얄밉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지적 유희로 읽혀온 것일 테다.

도킨스의 책은 (최신작 자서전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으나, 딱 하나 예외가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였다. 마침맞은 기념으로 최근 이 책이 한국어판으로는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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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는 종종 자기 책 중에서 이 책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가 1991년에 했던 영국왕립연구소 크리스마스 강연의 내용을 담은 것인데, 쓰다 보니 추가할 말이 자꾸 길어져서 책은 1996년에야 나왔다고 한다. 어린이 청중에게 했던 강연이 토대라서인지 서술이 친절하고 상세하다.

원제에서 짐작되듯이, 이 책은 진화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된 의문인 "중간 단계까지만 진화한 특질은 아무 기능이 없을 텐데 어떻게 선택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눈이나 날개처럼 복잡한 특질은 언뜻 오르기 '불가능한 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불가능 산의 절벽 뒷면은 사실 완만한 오르막길이라서, 자연선택이 한 걸음 한 걸음 누적적으로 적응을 진화시키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 얼마 전에 기존의 미진했던 번역을 다듬은 <확장된 표현형>의 개정 번역본도 나왔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기적 유전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전자가 다른 종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논증했던 <확장된 표현형>은, 도킨스가 "내가 만일 천국의 문에서 '생전에 너는 무슨 일을 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확장된 표현형>을 남겼다고 대답하련다"고 말했던 책이다.

도킨스의 책 중 제일 많이 팔린 것은 사실 우리 시대 무신론의 경전이라 할 <만들어진 신>이다. 그러나 그가 쓴 십여 권의 진화 책들은 어느 한 권 빼놓을 것 없이 모두 의미가 있고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올해 초 가벼운 뇌졸중을 겪었던 그가 만수무강하기를, 그래서 책으로 학문과 세상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대중서로 읽는 과학의 재미를 알게 한 그가 독특한 존재감을 계속 과시하기를, 독자로서 바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