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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네영화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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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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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기사에 흔히 그려지는 유럽의 한류 열풍. 이를 실제로 런던, 파리 혹은 베를린 같은 유럽 문화의 중심지에서 찾아보긴 힘들다. 다니엘 튜더가 말하는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쫓는 '힙'한 곳에서도 한국 문화 상품은 아직까지 너무 새롭고 너무 신기할 뿐이다. 물론 유럽인들은 강남스타일을 안다. 한국이 한류로 아시아의 문화 시장을 휩쓰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를 한국 문화 콘텐츠를 열렬히 사랑하는 한류 열풍에 빗대어 말하기엔 한류라는 단어와 현지 모습 사이의 거리는 꽤나 크다. 그런데 이 한국 문화 상품이 한국영화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기덕, 박찬욱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그 긴 해외 영화제 수상 실적은 보도 기사보다 신빙성 있게 유럽 영화인들의, 또 영화제를 찾는 일반 대중들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상기된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눴던 내 기억 속 수많은, 정말 수많은 유럽인들을 여기에 그 증거로 덧붙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내가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 경험한 날들이 내 주장의 맺음말로 알 맞춤일 것 같다. 이 글에선 국내 영화인들은 알지만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우디네극동영화제와 한국영화에 대한 유럽 영화인들의 사랑에 관해 영화제만큼 친근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필자도 올해 처음으로 영화제를 알게 됐다. 고맙게도 영화제를 15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한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배우 그리고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인 영화인 달시 파켓이 영화제와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필자에게 들려줬다.

우디네는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이탈리아에 연고가 있지 않은 이상 다른 유럽 국가의 일반인들도 이 도시를 잘 알지 못한다. 약 십만 명의 주민만이 이 도시에 거주하고 딱히 이렇다 할 문화 유산이나 자연 유산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마다 4월 말이면 도시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극동 아시아 영화를 중점으로 선보이는 우디네극동영화제를 찾는 다양한 나라 사람들로 활기를 찾는다. 올해로 벌써 18회를 맞이한 이 영화제는 이제 이탈리아 국내 3대 영화제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영화제로 손꼽히게 됐다. 올해는 도시 거주민 수의 절반이 넘는 약 6만 명의 아시아 영화 팬들이 우디네극동영화제를 찾았다고 한다.

저명한 아시아 영화인들도 많이 다녀갔다. 작년에는 우리에게 친근한 영화인 성룡과 지브리 스튜디오 장편 애니메이션 음악 담당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히사이시 조가 우디네를 찾았다. 올해는 홍콩 영화인 홍금보와 두기봉 감독 그리고 일본 컬트 영화 거장 노부히코 오바야시와 영화배우 마츠다 류헤이 등이 영화제를 빛냈다. 국내 영화인 중에서는 영화 <타짜>로 영화제를 참석한 영화배우 김혜수가 '아시아의 디바'로 선정됐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부당거래>와 <베를린>으로 영화제에 2번 다녀갔는데, 그의 동생인 배우 류승범도 한 번은 영화배우로 또 한 번은 파티 DJ로 함께했다고 한다. 참고로 3년 전에는 북한과 벨기에 그리고 영국의 합작 영화 <김 동무는 하늘을 난다>의 주연 북한 여배우 한정심이 우디네 영화제에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된 영화인 김동호는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영화제'로 우디네극동영화제를 소개한다. 연출 입봉작 <나홀로 휴가>로 올해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배우 겸 감독 조재현은 인터뷰에서 우디네영화제가 국내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작지만 알찬 영화제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두기봉 감독은 그의 영화 <용봉투>의 몇 장면을 우디네에서 찍으며 이 작은 도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달시 파켓은 이 영화를 언급하며 우디네에서 촬영된 장면에 나오는 엑스트라 중에 영화제 관계자들이 많아 웃겼다고 회상했다.

유럽 아시아 영화 팬들도 우디네극동영화제를 선호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우디네를 찾은 영화 평론가나 기자 혹은 아시아 영화 팬을 적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제의 한국인 참석자 의전을 맡은 스테파니아는 우디네와 베네치아 그리고 트리에스테 등이 속한 베네토 지방에서 아시아와 영화 관련 전공을 하는 학생들에게 우디네는 한 번쯤은 가보거나 자원봉사자로 일해 봐야 하는 필수 대외 활동 코스라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 규모가 커져 영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하나의 장이 된 영화제에 대한 우디네 시민들의 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시내 가게나 레스토랑 곳곳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와 배지가 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관객과 영화인들의 소통에 있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영화제를 평했다. 실제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게스트와의 인터뷰 시간이 마련돼 있고 영화 게스트가 영화제에 참석할 경우엔 항상 무대 인사 후에 영화가 상영된다. 무엇보다 영화제 관련 행사는 모두 누오보 극장 한 군데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어느 영화제보다 관객과 영화인이 쉽게 어울릴 수 있다. 또 참석자 대부분이 유럽인이라 아시아인에겐 셀렙들을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이보다 더 특별한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영화제가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영화 팬들이 우디네를 찾는다.

국내 영화인들은 한국영화를 향한 유럽 현지 영화 팬들의 각별한 애정 때문에 이 작은 영화제를 선호한다. 영화제의 유일한 상인 관객상은 한국영화에 가장 많이 수여됐다. 올해 제18회 관객상 금상과 은상도 영화 <오빠생각>과 <로봇, 소리>에 돌아갔다. 달시 파켓에 의하면 국내 영화 시장에선 그리 흥행하지 못했던 영화들도 현지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배우 이시영과 오정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남자사용설명서>를 예로 들며 관객들의 큰 호응과 박수 갈채에 감격했던 이원석 감독이 기억난다고 덧붙이며 미소 지었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재현 감독은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대사에도 관객들이 반응해 놀랐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한국영화가 유럽의 영화팬들에게 먹히는 이유로 현지 영화인들은 한국영화만의 감정 표현 방식을 가장 먼저 손꼽았다. 토리노영화제 관계자 피에르는 일본 영화와 한국영화를 예를 들어 비교하며 일본 영화 캐릭터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영화 문맥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영화는 그렇지 않고 감정이 다채롭게 표현돼 있어 유럽 영화 팬들이 영화 내용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을 관람한 한 현지인은 어른인 자신도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색다른 문화나 사회상을 보여준다는 점도 한국영화가 유럽인에게 사랑받는 이유이다. 영화 <4등>으로 우디네를 다시 찾은 정지우 감독은 GV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지나친 교육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공부의 나라>와 함께 유럽 대중들이 한국 사회의 단편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영화가 가톨릭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또 오컬트 장르를 어떻게 그려냈는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이른 아침 9시에 영화관을 찾아 배우 강동원과 김윤석 주연의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는 영화 팬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달시 파켓은 요즘 한국영화는 상업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많아졌다고 우려하면서도 영화 <로봇, 소리>와 같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사이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겸비한 영화가 여전히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유럽 에서 아시아의 입지가 커져 한국영화에 대한 유럽 현지인들의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우디네극동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 사브리나 바라체티와 토마스 베르타체는 날로 성장하는 영화제를 위해 해외의 다른 영화제들을 발로 뛰며 주류부터 비주류까지 다양한 아시아영화를 섭외하려고 노력한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그중 하나여서, 개막식 사회를 봤던 사브리나는 세월호사건과 영화 <다이빙벨>을 언급하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기원했다.

4월 말에 이탈리아를 방문할 일이 있는 영화 팬이라면 우디네극동영화제를 들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디네에서 관객들은 단상에서 내려온 감독과 배우들을 격식 없이 만나볼 수 있고, 영화인들은 유럽 관객들의 따뜻한 호응을 받고 돌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이탈리안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건 덤이다. 필자가 찍은 올해 영화제 사진은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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