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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는 대로 남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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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시절, 그러니까 어언 무려 십수년 전, 친구가 실수로 이상한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다. 친구는 곧 그 사진을 지웠지만, 이미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스크랩해간 후였다. 살다 보니 그 친구와는 연이 닿지 않게 됐지만, 아마 그 사진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외장하드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다.


좋든 싫든 우리는 모두에게 떳떳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떳떳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참 사소한 해프닝이었지만, 그때 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한 번 온라인 공간에 뭔가가 올라가면 이젠 진짜 끝이구나. 정보는 시간 같아서,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또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구나. 당시 나름 엄청 진지하게 이런 식의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싸이월드에 전체공개로만 글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특정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면, 그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좋든 싫든 우리는 모두에게 떳떳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떳떳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smart phone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 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나오는 구절이다.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은, 기록으로 남은 부분만 남는다. 아무리 찬란한 삶이었어도, 남은 기록이 비루하면 삶은 영영 비루하게 된다. 뭐 이미 죽은 마당에 누가 내 삶을 어떻게 기억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며, 사는 동안 아름답게 잘 살다 가면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하길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래나 영화나 음식도 남들한테 열심히 소개하는 판에, 하물며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내 삶인데.

'나'라는 건 뭘까. 내 '삶'이라는 건 뭘까. 유기물 덩어리? 기억의 총체? 뭘로 정의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정의'라는 건 존재의 본질을 언어로 서술하는 일이고, 제대로 정의한다는 건 그 본질을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바뀌어도 된다는 뜻인데, 다른 유기물 덩어리가 되고, 읽기 전용 파일처럼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된다면 그건 나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말이 되는 것 같은 정의는 '어떤 정보들의 총 집합'이다. 누군가의 동료이자 친구이자 자식. 수많은 기호와 취향의 교집합. 여태껏 해왔던 선택과 거쳐왔던 맥락.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나는 내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덜 중요해진 정보들도 있다. 내 머릿속에서 잊혀졌지만 어딘가에 일기로, 편지로, 사진으로 남아 있는 정보들도 있을 거고, 그야말로 깡그리 완전 삭제된 정보들도 있을 거다. 그렇게 나는 계속 새로운 내가 된다. 거참 이 시간이라는 축은 '나'를 정의하기 참 힘들게 만든다.

정보는 왜곡될 수 있다. 인코딩 과정에 잡음이 생길 수도 있고, 디코딩 중에 편견이 껴들수도 있다.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전' 대통령이 잘못하셨을 리 없다고 굳게 믿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처럼 곧이곧대로 주어진 정보가 입력될 때도 있다. 아니 아마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거다. 살면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정확한 인식과 어처구니없는 편견의 비율은 아마 1:999보다도 크지 않을까. 이마저도 왜곡일 거고.

물론 백억 년 전 빅뱅이 우주복사를 남겼듯, 어떤 사건이 한번 발생하는 순간 그 흔적이 영원히 우주에 새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간 우리가 그 흔적들을 깡그리 모아서 모든 걸 알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왜곡과 편견과 무지투성이다.


요즘처럼 삶의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온라인 공간에 남는 세상은, 들키기 쉽다. 이런 세상에서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모든 현명함은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출발한다. 내 삶이 어떤 형태로든 무조건 왜곡되고야 말 거라는 확신은, 내가 내 삶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인코딩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 조금 더 좋은 판단을 하게 해 준다.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삶에 대한 정보를 이런 방식으로 디코딩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걸 감안해서 나를 남기자. 내가 좋아하는 내 삶의 부분들이 더 잘 드러나도록 하자. 마치 이렇게만 살았던 것처럼. 그러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살자. 내가 싫어하는 내 삶의 부분들은 최대한 숨기자.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원히 없애버리자. 그러기 위해서 더 조심히 살자. 글을 쓰자. 사진을 찍자. 말을 아끼자.

무엇보다도 제대로 살자. 좋은 삶을 남기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요즘처럼 삶의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온라인 공간에 남는 세상은, 들키기 쉽다. 이런 세상에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꾸며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아니꼬운 꼬라지를 안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 건 내 자신이 함부로 내 삶을 꾸며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들키기 쉽다는 걸 아는 사람의 삶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강제로 조심해야 하는 세상은 불편한 대신 나처럼 나약한 사람이 조금 더 진실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사는 대로 남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