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장수연 Headshot

아빠에게 육아를 허하라

게시됨: 업데이트됨:
1
Gettyimage/이매진스
인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고 보니, 전엔 없던 제도가 생겨 있다.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근로자의 연장/휴일/야간근로를 제한하는, 이른바 '모성 보호 제도'. 내 경우 아직 둘째를 낳은 지 8개월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라 야간/휴일 근로는 불가하고, 연장근로도 1일 2시간 이하로만 가능하다. 이 법규 덕분에 나는 MBC 라디오PD들이 한 달에 한 번 해야 하는 숙직 근무에서 당분간 제외되었다. 첫째를 낳을 당시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다. 젖먹이 아이를 떼어 놓고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회사에서 자야 했던 밤, 텅 빈 숙직실에 울려퍼지던 '부르륵 부르륵' 하는 유축기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회사 입사 동기들에게 '이런 제도가 있으니 참고하라'고 단체 카톡방에 올려줬더니, 나와 같은 해에 아이를 얻은 한 남자 PD가 그런다. "이거, 사실 배우자한테도 적용해야 해. 남편이 야간이나 휴일에 근무 하면 엄마가 고생하잖아. 그리고 여성들한테만 이런 제도를 적용하면, 회사에서 여사원 기피할 것 아냐." 카톡방은 순식간에 이 PD를 향한 동기들의 찬사로 넘쳐났다. "이 남자, 안 그래도 멋있었는데 아이 낳고 완전 개념남 됐네!" "00오빠는 점점 완벽해지네요" "000을 사장으로!"

없던 제도가 생긴 건 물론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게 여성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읽힌다. 사실 우리나라에 아이를 키우는 남성 근로자를 위한 제도는 거의 전무하다. 심지어 출산 휴가의 일수도 '5일의 범위에서 최소 3일 이상'이라고만 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회사 분위기, 뻔하지 않은가. 법에 '최소 3일'이라고 돼 있다는 건, 길게 줘야 3일이란 뜻이다. 내 남편도 첫째와 둘째를 낳을 때 각각 3일씩 쉬었다. 아니, 결혼할 때 신혼여행으로 쓰는 휴가도 보통 7일인데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고작 3일 쉬는 게 말이 되는가? 여성이 아이를 낳고 몸을 회복하는 기간이 최소한 4주이다. 남편이 3일 있다가 출근해야 하니, 결국 외부의 도움 없이는 이 기간을 버틸 수 없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도우미를 고용할 돈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말라는 말인가.

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수유실에 갈 때도 비슷한 걸 느낀다. 수유실엔 으레 '아빠는 밖에서 기다리세요'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수유실은 엄마의 공간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수유실에서 '수유'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기저귀도 갈고, 손도 씻기고, 이유식도 먹인다. 그래서 수유실은 이런 다양한 일을 하는 '거실'같은 공간과 진짜 수유를 하는 '방'같은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적어도 '거실'같은 공간까지는 아빠가 들어올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엄마가 물건을 고를 동안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수유실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엄마뿐이라니,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은 정말이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수유실 밖에 쓰여 있는 '남성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 때문에 아빠들이 쭈뼛쭈뼛 수유실 안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이 다 안타깝다. 아빠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경우라면 어쩔 것인가. 한발 더 나가, 엄마가 없는 싱글대디 가정이라면 어찌 해야 하는가. 아빠들을 위한 육아 공간이 필요하다. 따로 그런 공간을 마련할 수 없다면, 우선 수유실 간판을 '육아방'이라고 바꾸고, 육아방 안에 수유방을 따로 두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아이 돌보는 아빠를 쭈뼛거리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아빠가 자연스럽게, 재미있게 상황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엄마가 편하다.....는 아니고, 흠흠, 아이를 향한 아빠의 사랑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최근 몇 년 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왜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가. 갓 태어난 망아지는 곧 걸을 줄 알고, 고양이는 생후 몇 주만에 사냥에 나서는데 유독 인간의 아기만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돌봐야 하는 이유 말이다. 그건 직립보행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똑바로 서서 걸으려면 엉덩이가 좁아야 하므로 아기가 나오는 산도도 좁아지는데, 이게 분만 중 사망하는 여성의 수를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아기의 머리가 작을 때 일찍 출산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은 어떤 일을 벌였는가. 가족과 사회를 발달시켰다. 인간 여자는 혼자서 자녀와 자신의 식량을 조달할 수 없다.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따라서 인간은 강한 사회적 결속을 이룰 능력이 있는 존재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이유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이다. 공동체 전체가 육아에 책임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다. 유레카! 두 발로 걷는 모든 자, 육아에 책임이 있느니!

지금 한국 사회는 공동체는커녕 가족도, 아니 부부도,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게 어렵다. 오로지 아이 엄마 한 명에게만 육아를 맡긴다. 이것은 불공평한 게 아니다. 미개한 것이다. 진화를 거스르는 일이다. 남성에게도 육아를 허해야 한다. 아빠들의 근로 시간을 줄이고, 아이를 돌보는 남성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일에 책임 있는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들이여 서두르시라. 그러지 않으면 다시 네 발로 걷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