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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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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자리가 있었다. 처음 보는 분이 나를 글로 먼저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다. 회사 밖에서 내 이름을 밝히고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없는 데다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읽었다니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도 조심스러웠다. 글을 통해 받은 첫인상은 어떨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있을지 긴장한 채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후식을 먹고 나서야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활달한 분인가 봐요. 글만 읽었을 땐 차분하실 줄 알았거든요."

내가 초면에 너무 수다를 떨었나. '생각보다'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려 또 다른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만든 나란 사람의 이미지를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쓴다는 걸 자각할 무렵엔, 오래전 일이 함께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지낸 날, 친구로부터 낯설디 낯선 말을 듣게 된 날이었다.

"너 원래 이런 성격 아니잖아."

고민 끝에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였다. 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니까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 거라고, 그래서 새로운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이었는데, 돌아온 말은 '그 고민은 결코 너답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운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친구가 만들어둔 나란 사람에 대한 틀.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허허 웃어넘기고 어떤 고민이든 알아서 해결하는 사람. 그 틀을 벗어나면 나를 낯설어할 수도 있다는 걸 그 순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를 자주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때그때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만들어둔 어느 때의 나로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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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사를 나눈 그녀의 말대로 나는 대체로 발랄할 성격이지만, 그날만큼은 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진 못했다. 어쩌면 애써 차분해지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수십 명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면 나에 대한 이미지도 수십 개가 생길 거라는 걸 모르는 나이도 아니지만, 여전히 주춤한다. 내가 유난히 말이 많든 적든, 자주 웃든 아니든, 오늘의 너는 그런가 보다,라고 자연스럽게 바라봐주는 이들이 그리운 것도 바로 그런 날이다. 내가 생각하던 너에게서 조금 벗어났더라도 지금 보는 네가 바로 너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길 바라서.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 스스로에게 그 말을 들려줄 수 있길 바란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