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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동의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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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자몽에이드가 맛있어요."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평일 오후. 처음 인사를 나눈 분들과 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그때 한 직원이 평소에 자주 오는 곳이라며 선뜻 메뉴를 추천해주었다. 메뉴판을 골똘히 보고 있던 모두는 일제히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럼 전 자몽에이드."
"저도!"
"저도요."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따랐지만, 자몽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잠시 망설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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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참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이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대방이 건넨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 혹은 거절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있었던 아주 사소한 결정도, 예전의 나였다면 그녀의 말을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친절하게 메뉴를 추천해준 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하는 분위기에서 선뜻 내 의견을 말하기란 어려웠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하루에도 여러 번, 나의 의견을 굽히는 일이 있었다. 어찌 보면 내겐 흔하고도 익숙한 일이었다.

"다 맞추려고 하니까 힘들지. 그럴 필요 없는데. 상대방은 네가 이렇게까지 맞추고 있는지 모를 걸."


누군가의 결정을 따랐지만 그게 내내 마음에 걸리는 날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로부터 미련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맞출 필요 뭐 있느냐고. 어차피 그런 거,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 못 할 텐데. 그땐 그게 수월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른 의견을 얘기할수록 상황은 복잡해지고 피곤해질 테니까. 딱히 싫은 게 아니라면 그대로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습관이라고 믿었던 그 일들 속에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때그때의 결정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제대로 된 표현을 하지 못한 게 아닐까, 하고.

"어떨 땐, 이런 내가 잘 이해가 안 돼.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내 의견을 잘 내놓지 못할 때도 있거든. 그냥, 까다롭거나 나쁜 사람 되기 싫은 건지도 몰라. 늘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막상 겪어보니까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아."

나는 이런 내가 답답하게 느껴져 하소연을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네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했다고 해서 널 미워할 사람이라면, 차라리 네 옆에 없는 게 나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리도 후련했을까. 아직까지도 그 순간에 친구가 해준 말이, 나의 생을 참 많이 바꿔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아주 사소한 결정부터, 내 미래를 전부 바꿔놓을 수도 있을 중대한 결정까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는 대상이 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속에 있다는 걸, 나는 꽤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았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든 우리는 근처를 조금 걷기로 했다. 다정했던 바람이 오늘은 어딘가 쌀쌀맞게 느껴졌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