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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aged] 20세기 음악의 거장, 피아니스트 Leon Fleisher와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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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는 24세 때 벨기에에서 열린 퀸엘리자베트 피아노 콩쿨에서 미국인으론 처음 수상을 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37세 때 오른손에 찾아온 치명적인 근의 실조증(힘줄 손상)으로 오랜 시간 연주 활동을 중단했으나 Peabody Institute of Music에서 1959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을 가르쳐오고 있으며,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이라도 그에게 사사받기를 원할 만큼 존경받는 음악가이다. 특히 베토벤과 브람스의 피아노 콘체르토는 유명하다. 지휘자 겸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 세계에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따뜻한 2월 오후에 우리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의 한 분인 레온 플라이셔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왼손을 위한 프로코피에프 4번 피아노 콘서트를 마친 후 아늑한 드레싱룸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2인연주 파트너로 활동하는 부인인 캐서린 제이콥슨과 함께 그는 우리를 넘치는 환대로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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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이소은: 선생님은 최근에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으시죠? 한국의 인상과 한국에서의 경험을 조금 들려주세요.

LF: 네, 부산을 방문했지요. 플로리다 리조트나 아름다운 열대 지방 같았다는 기억이 있어요. 아침식사로 아주 맵고 빨간 스프 같은 것을 주었는데 숙취에 좋을 것 같더군요. 매운 맛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소연: 해장을 하셨군요! 해장국이나 혹은 육계장이었을 것 같은데요?

LF: 그 맛을 본 후 그 맛을 계속 찾고 있어요. 하하. 또 생각 나는 이미지는 방금 생산한 신차들이 한없이 넓은 공간에 주차된 광경이에요. 보고 놀랐지요. 여러모로 한국에서 아주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나는 재능이 뛰어난 한국 학생들을 끊임없이 가르쳐오고 있지요.

이소연: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한국의 호랑이 엄마들의 교육열이 대단합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열성적이지요.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LF: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부모들이 자녀들의 삶이 그들 자신의 삶보다 더 크고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이런 현상은 동유럽에서도 아주 많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렸을 때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주로 러시아나 폴란드 등의 동유럽국가 출신이었어요. 유태인 가계는 지나치게 강압적이기도 하지요. 나의 어머니도 나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어요. 최초의 유태인 대통령이 되든지 아니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이소연: 클래식 음악은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따라 불가피한 변화를 격고 있어요. SNS, 소셜 미디어 같은 매체를 적극 활용해야 하고, 늘 색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홍보해야 하고, 뮤지션이 사업적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 현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요. 음악이 비스니스화되어 가는 이 점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LF: 그런 모든 현상은 현실에 대처하려는 시도와 장치라고 생각해요. 클래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월등히 적어요. 클래식 음악가는 이 사실을 알고 수용해야 해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지요. 우리가 하는 클래식 음악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의 정신(영혼)에 관계되는 어떤 것이지요. 음악과 연결되고 더 가까워지면 현대의 생활에서 만나기 어려운 우리 영혼의 한 부분과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은 어떻습니까?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 되어 우리 주변의 많은 작은 기기들이 우리의 존재와 삶을 차지하고 마음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지요.

우리를 유니크한 존재로, 동물과 구별되는 위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이 마음(감정)이지요. 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너무 바빠서 이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감정을 처리하는 일이나 감정을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을 거의 가질 수 없지요.

음악 환경의 변화는 어느 세대에나 있었고, 그에 따르는 어느 정도의 불만은 항상 있었어요. 확실한 것은 수준 있는 훌륭한 음악은 어느 때나 유지되리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음악을 대중화시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음악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음악가들을 육성하려고 노력하세요. 인기를 구하면 안됩니다. 저는 랑랑 같은 인기는 옳은 길에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한다면 클래식 음악은 조금씩 가치가 떨어지고 말겠지요.

이소연: 선생님께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구체적으로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LF: 좋은 질문입니다. 아주 핵심적인 질문이군요. 글쎄요. 말장난을 하자면 클래식도 entertaining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지요. 우리는 마음을 열고 집중해서 예술을 이해하려고 할 때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어요. 깊이 참여하여 예술의 일부가 되어야 해요. 예술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방관자나 지나치는 사람한테까지도. 예술에서 좋은 경험이나 훌륭한 대가를 얻고자 하면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수동적입니다. 가장 주된 차이가 여기에 있어요.

이소연: 저는 오랫동안 쥴리아드 음대에서 쥴리안 마틴의 조교로 일한 후에 신시내티음대에서 약 2년여 전부터 가르치고 있어요. 해마다 행해지는 학교 오디션 기간에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에요. 오늘 아침에 18살 젊은 학생이 후기 베토벤 소나타를 노트와 역동성, 그리고 지시 사항에 있어서 완벽하게 연주했어요. 그러나 음악 자체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명백한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뽑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제가 이 학생의 선발에 동의한 것이 학생들의 음악성보다 기교를 많이 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LF: 많은 선생들이 음표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을 좋게 평가하기도 하지요.

이소연: 그런 것 같아요. 이것이 교육체계의 오류라고 생각하십니까?

LF: 예를 들어 만국어인 에스페란토라고 불리는 언어가 있고 그 언어를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들은 모든 사람이 말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전 우주를 위한 공통의 언어가 되는 에스페란토를 창조했지요. 말하자면 이 아이들이 음운학적으로 완벽하게 발음하고 말은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지요. 연주자들이 음악도 이런 방식으로 연주합니다. 테크닉과 기교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음악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어요. 그리고 이것은 음악의 목적이나 의미도 아닙니다. 학생들이 그런 상황에 이르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들이 오랜 시간 열심히 연습하고 나름의 훈련을 위해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음악가로서 커리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나는 그런 사람이 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분명히 원치 않을 것입니다.

이소연: 학생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LF: 그런 면에서 당신이 부럽지는 않군요. (웃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학생들이 누구의 음악을 듣는지 궁금하군요. 유자왕이나 랑랑 등 그들이 들어서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의 음악을 듣겠지요. 학생들이 슈나벨,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 등의 연주를 듣는다면, 그들이 아하!! 하며 이해하는 시점이 있을 거예요. 만일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어요. 모든 학생에게 다 훌륭한 선생은 될 수 없어요. 어려운 일이지요.

이소연: 선생님께서는 학생에게서 어떤 자질을 찾습니까?

LF: 학생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과 에너지를 보지요. 그리고 이를테면, 두 음 사이의 공간, 두 음사이의 길이와 관계, 두 음의 관계에서 한 음이 다음 음으로 어떻게 옮겨 가는가, 이런 것들을 음악 속에서 듣고 경험하고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지요. 이런 것들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이소연: 선생님은 이러한 종류의 대화를 학생들과 하십니까?

LF: 항상 하지요.

이소은: 그런 레슨에 몰래 숨어 들어가 보고 싶네요.

LF: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이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제 인생에서 20세기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인 쉬나벨(Schnabel)을 만난 것은 대단한 경험이었지요. 그 당시에 쉬나벨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음악가나 피아니스트는 없어요. 나는 9살 때 오디션을 했고, 그 후 10년 동안 그에게 배웠지요. 거의 10년이 됐을 무렵 그는 나를 게으르다는 이유로 내보냈어요. 그 게으름이란 음악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찾지 않고 매주 하는 레슨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지요.

음악 교육에 대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음악을 18세가 되어서 전공과목으로 하는 것은 너무 늦어요. 음악 교육은 4, 5, 6세에 시작해야 되지요. 신경근육 연결이 악기와 자리 잡고 그것으로 인하여 악기와 연주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고 악기는 확장된 자신이 되려면 이미 성인이 된 후에는 너무 늦습니다.

이소은: 악기가 확장되어 네 자신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LF: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육체적인 확장이지요. 당신이 연주할 때 악기는 낯선 대상이 아니라 당신의 한 부분이 되지요. 건반은 당신 손가락의 확장이에요. 이것은 완전한 전체로서의 확장을 의미해요.

이소은: 음악을 연주할 때 작곡가와 연주자 사이에 비중을 어디에 두십니까?

LF: 모든 것은 음악과 작곡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은 작곡가도 아닐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리듬, 조화, 멜로디의 연결관계와 음악적 구성요소에 얼마나 민감한가의 문제지요. 연주자는 그것들을 잘 인지해서 균형을 이루고, 음악적인 요소들을 융합하고 조화시킬 수 있도록 음악에 정통해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모든 것이 음악으로부터 나와야 해요. 인기를 위한 연주나 스타의식을 가지고 하는 연주는 음악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Schnabel이 음악에 대해 한 말이 있어요. "연주자는 알프스 산의 안내자와 같은 것이다. 안내자는 산의 정상에 오르는 데 숨겨진 길을 아는 사람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가 스타는 아니다. 산 정상에 데려가는 사람은 안내자(연주자)이고, 그 경치가 음악이고, 경치를 즐기는 사람은 청중이다."

이소은: 그분의 또다른 말이 기억나네요. "감상은 피하고 감성을 찾고 정의하는데 집중하라."

선생님이 교육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특히 선거가 임박해서 요즘 여론화되는 것은 금융과 비즈니스,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이 어떻게 일자리와 살아갈 길을 찾을까 고심하며, 정부의 관점도 수학과 과학교육에 초점을 두고 예술은 한 켠으로 비켜나고 한계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LF: 이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의 연결을 필요로 하지요. 문학, 미술, 음악, 예술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를 감싸고 있는 우주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주지요. 정부의 형태는 어떤 점에서 모험과 이상주의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러나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사람들은 각자의 머리를 물 위로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밟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요. 그들은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나의 기능이 무엇인지, 존재의 목적, 우주와 나와의 관계, 등에 관한 커다란 질문을 생각할 시간이 없지요. 돈 돈 돈... 돈이 있어야 산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지요. 돈을 버는 것이 용기를 준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미국보다 역사가 길고 현명한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나은 길로 인도해야 돼요. 나는 우리(미국)가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이소연: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연주 경력의 절정에 찾아온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셨는데,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삶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고통을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LF: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사람들마다 겪고 있는 문제나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악조건에서도 가능성은 있어요. 이르테면 내가 가장 낮은 곳에 있구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가능성(보다 넓은 시야)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건이 연주자인 나의 오른손에 생겼어요.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도 없고, 왼손만을 위한 연주 음악은 충분하지도 않았지요. 음악에 있어서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한정이 되어 있으니까요. 2년 동안 나는 자포자기하고 절망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는데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나를 깨웠지요. 음악과의 관계란 나와 음악과의 관계이지 피아노 연주자로서만의 관계가 아니다! 라는 새로운 인식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갑자기 나는 가르치는 활동을 확장할 수 있고, 왼손을 위한 곡을 연구할 수 있고, 지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휘가 나를 구원하는 은총이 되었어요. 나는 지휘자로서 정말 특별하고 황홀한 경험을 했지요 .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80-90명의 단원이, 음악에 대한 지휘자 한 사람의 비전과 식견을 믿고, 그 음악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도록 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서 거의 완성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생에서 그 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것은 없어요.

낙담하고 어둠에 싸이고 희망을 잃기는 아주 쉬워요. 그러나, 다음날 아침,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가지고 잠을 깰 수 있어요. 그 가능성을 결코 저버리지 마십시오.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 놓고 항상 찾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