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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ction 48 | 성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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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ction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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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공산주의자답게, 나는 이념적-정치적 기준에 따라 영화를 판단한다. 그래서 내가 최근 12개월 동안 봤던 영화 중 최고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디 알로니의 'Junction 48'이었다.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젊은 '이스라엘계 팔레스타인 인'(1948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 안에 남아 있었던 가족들의 후손인 팔레스타인 인들)들의 곤경을 다룬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두 전선에서 끊임없이 고투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압제, 그리고 자신들의 지역 사회 내의 근본주의자들의 압력이다. 주연은 유명한 이스라엘계 팔레스타인 인 래퍼 타메르 나파르가 맡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여성을 '명예 살인'하는 전통을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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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나파르에게 묘한 일이 생겼다.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에서 '명예 살인'에 항의하는 노래를 부른 다음, 반 시온주의자 학생들 몇 명이 '명예 살인' 주제를 다룬다는 이유로 그를 공격했다. 그들은 나파르가 팔레스타인 인들을 야만적인 원시인으로 보는 시온주의자들의 견해를 홍보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그리고 만약 명예 살인이 존재한다면, 그건 이스라엘이 점령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인들이 원시적인 상태로 남았고 현대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니 이스라엘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나파르는 이렇게 위엄 있게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비난할 때, 당신은 당신들의 급진적인 교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영어로 내 지역 사회를 비난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랍어로 노래한다."

나파르가 아티스트로서 현실에서 하는 것은 그가 영화에서 연기한 주인공의 행동과 겹친다. 그들 둘 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가족의 테러에서 보호하며 잘난 척 윗사람 행세를 하지 않는다. 그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위해 싸우게 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알로니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녀가 가족들의 바람을 거스르고 콘서트에서 공연하기로 하자, 두 사촌이 집 밖의 차에서 그녀를 데려가 명예 살인하려고 기다린다. 어떻게 되는지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소녀가 살해당할 거라는 인상을 남긴다.)

나파르는 팔레스타인 소셜 미디어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극히 중요한 싸움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 싸움은 슬프게도 서방에서는 무시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나파르와 무하마드 아사프다. 아사프는 가자 출신의 가수로, 팔레스타인 인들뿐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에서 인기가 있고 심지어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유명하다. 아사프는 가자의 하마스[반 이스라엘 과격 단체]와 아사프가 팔레스타인의 문화 대사라고 선언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정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오케스트라 팝 스타일의 애국적인 노래를 부른다. 그가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정치적으로는 그는 통합하는 인물이다. 2016년 3월에 아사프는 인터뷰에서 '전통'을 지키는 것의 일부로, 자신의 자매가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파르는 아사프에게 감동적인 공개 서한을 보냈다.

"만약 다른 팝 아티스트가 '우리의 전통에 의하면 여성들은 노래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전통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내 자매가 노래하도록 허락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항의하고 그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우리의 가자 출신 신데렐라 아사프이기 때문에 나는 분노는 느끼겠지만 상처를 받은 것은 나다.

가자와 서안의 거리, 디아스포라, 난민 캠프, '48 안에서 무하마드 아사프를 지지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였던 팔레스타인 인들처럼, 우리는 아사프에게 우리와 같은 거리에 모여 예멘과 가자, 모로코와 요르단, 알 로드의 소녀를 격려하자고 요청한다. 노래하고, 춤추고, 곡을 쓰고, '아랍 아이돌'에 출연하기를 꿈꾸는 소녀 말이다! 우리 팔레스타인 인들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젠더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워야 한다. 내 꿈은 손을 잡고 행진하는 것이다. 그 어떤 분리의 벽도 없이 여성이 남성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것이다. 따로 떨어져 걷는 동시에 통합을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전통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개인적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로드 게토의 성난 아이였다. 나는 어머니가 파이루즈[레바논 옛 가수]의 노래를 불러주시기 전까지는 진정할 수 없었다. 내가 소중히 여기고 싶은 전통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내 친애하는 아랍 자매들(하와), 최대한 큰 소리로 노래를 하세요, 우리가 진정할 수 있도록 경계를 무너뜨리세요. 모두를 위한 자유가 아니면 누구를 위한 자유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파르가 서방 진보주의자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 '말콤 X'에서 멋진 디테일이 등장한다. 말콤 X가 대학에서 강연을 한 뒤, 백인 여학생이 다가와 흑인들의 싸움을 돕기 위해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는지 묻는다. 그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소."였다. 이 대답의 요점은 백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백인들은 먼저 흑인들의 해방은 흑인 자신들의 일이어야 하지, 선한 백인 진보주의자들이 선물로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백인들은 이 사실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경우에만 흑인을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나파르의 요점도 여기에 있다. 팔레스타인 인들에겐 잘난 척하는 서방 진보주의자들의 도움은 필요없다. 팔레스타인의 생활 방식에 대한 서방 좌파의 '존중'에서 나오는 '명예 살인'에 대한 침묵은 더더욱 필요없다. 서방의 가치를 보편적 인권이라고 가정하는 것, 다른 문화를 그 문화의 일부일 수 있는 끔찍함과는 무관하게 존중하는 것은 똑같은 이념적 속임수의 두 면이다.

보편적 인권의 보편성이 뒤틀려 있다는데 대한 글은 이제까지 많았다. 은밀하게 서방 문화적 가치와 규범을 은밀하게 선호했다는 것이었다(개인을 개인이 속한 지역 사회보다 우선시 하는 것 등). 그러나 우리는 '삶의 방식'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다문화주의자 반식민주의자들의 주장도 틀렸다는 통찰을 여기에 더해야 하겠다. 그들의 주장은 특정 삶의 방식 속에 들어있는 적대감을 덮어버리고, 잔인성, 성 차별, 인종 차별 행위를 우리 외국인들이 '서방의 가치'로 재단할 권리가 없는 특정 문화의 표현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Junction 48'을 보기 바란다. 올바른 정치적 노선을 따를 뿐 아니라, 촬영과 연기도 멋지며 끝내주는 랩이 나온다. 브레히트 식의 전통을 잘 살려 학습과 기쁨을 혼합했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US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